[몰비춤-지리산댐 논란]정보없이 70년간 입 안에서 지었다 허물었다 반복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고 있던 지난 9일, 함양군 지리산 문정댐 예정지를 찾았다.

칠선계곡과 백무동계곡에서 내린 물이 여기 임천강으로 모인다. 기암괴석을 깎으며 흐르는 물 양쪽으로 높고 가파른 골이 형성돼 있다. 댐이 들어선다면 수몰될 도로변 밭에선 지금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다.

문정마을에서 용유담으로 오르는 고개에서 복숭아와 감식초를 파는 노부부는 농사일이 힘에 부친다고 한다. 나이는 들고 힘은 없는데 농사일은 끝이 없으니 보상받고 여길 뜨는 편이 낫다고 한다. 하지만 복잡하고 불안한 속을 감출 수는 없다. "나라가 하라는 일인데… 따라야지…"라며 말끝을 흐린다.

근처 칠선계곡은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은신했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후 대규모 토벌작전이 있었던 곳에서 '나라가 하는 일'의 의미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지난 1984년 '지리산댐 실시 기본계획'으로부터 시작한 댐 논란은 2008년 부산물 공급을 위한 남강댐 대책 이후 다시 구체화했다. 나이 든 주민들은 일제강점기부터 댐 건설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니 지리산댐 논란은 짧게 잡아도 70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래서 여기 주민들은 한편으론 무덤덤하다. 댐 이야기가 몇 년마다 한 번씩 나왔으니 이젠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으리라. 댐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지치긴 마찬가지다.

또한 선거가 잦아지면서 정치인들 입에 수시로 오르내리다 보니 이 지역에서 댐은 이미 수 차례 지었다 허물었다를 반복한 셈이다.

선시영(55) 씨는 스무 살 때 고향을 떠났다. 대구에서 나전칠기 관련 업을 하다 IMF 외환위기 때 힘겨움에 부닥쳤다. 결국 다시 함양군 마천면 고향 품으로 돌아왔다. 산장을 운영하며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지리산댐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생각했다. '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댐 건설 반대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생업까지 팽개친 그에게 아내는 '왜 하필 당신이어야 하느냐'며 하소연했다. 그렇게 15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지금 지리산댐 반대 마천면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권범철 기자

하지만 댐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자치단체와 수자원공사는 장점을 부풀리기에 바빴고 지역 발전이라는 환상을 심기에 바빴다. 현장에서 만난 환경단체 관계자는 이를 '박탈감 심기'라고 표현했다. 못 살고 있다는 박탈감이 '댐 건설'이라는 '구세주'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댐의 기능도 수시로 바뀌었다. 식수용이나 다목적 댐이었던 것이 최근엔 홍수 방지용으로 변했다.

이러다 보니 불신이 쌓인다. 수몰지역에 공무원들이 땅을 사놨다더라는 소문이 돌고, 누구는 어디서 돈을 받았다더라는 소문까지 지금 이 지역은 불을 댕기지 않은 폭탄과 같다. 부실이 부른 불신이다.

신공항 문제부터 밀양 송전탑과 지리산 문정댐까지… 요즘 이 '나라가 하는 일'이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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