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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상생정신 파주출판산단 원동력

[산업단지의 미래를 찾아] (4) 파주출판 '도시'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2014년 07월 10일 목요일

경기 파주출판도시는 산업단지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파주출판'도시'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정식 명칭인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는 주로 행정에서 쓰는 말이다. 주변 이정표에도 파주출판도시가 더 많이 눈에 띈다.

겉모습도 그렇다. 여기가 일반적인 산업단지인지 유럽의 어느 도시를 옮겨놓은 것인지 헷갈린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구를 파주출판도시 한편에서 보았다. 출판과 인쇄 업종을 토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주도해 만든 것이 오늘날 파주출판도시다.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 5월에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에서 출판전문 글로벌 인재양성 과정 개강식이 열리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일정이 다소 연기되긴 했지만, '파주출판도시 어린이 책 잔치'도 준비 중이었다.

도시는 사람을 키우고, 문화로 살찌우는 한편 아이들에게도 밝은 미래를 안겨주는 듯했다. 파주출판도시의 출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지역본부 파주지사 최윤근 지사장에게 들어봤다.

   
  최윤근 산단공 파주지사장  

사람과 자연의 조화

평일 낮 거리는 대체로 말끔하고 한산했다. 책을 찍어내는 인쇄공장에서 그나마 기계음이 이따금 들려왔다. 점심 무렵이 되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밥집과 찻집에는 정장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젊은이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건물은 네모 반듯하게 닮은꼴로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저마다 디자인이나 재질 면에서 개성을 내뿜고 있다. 거리 곳곳에 조형물이 놓여 있고, 간판은 튀지 않게 보행로 한편에 세워져 있다. 출판사와 함께 아기자기한 북카페도 발길을 멈추게 한다. 들녘, 문학수첩, 창비, 나남출판. 서점에서 자주 보던 이름이 간혹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파주출판도시 내 책방거리.  

파주출판도시는 남북으로 길게 뻗었는데, 비교적 높은 건물에 올라서면 북녘 땅이 손에 닿을 듯 보이기도 한다. 도시는 쭉 뻗은 자유로와 그 너머 한강을 옆에 두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여서 상업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10∼12m로 건물 높이가 제한돼 있다.

단지 가운데로 갈대샛강이 흐르는데, 콘크리트로 덮어버리지 않았다. 습지와 유수지를 그대로 살려 주변에 건물을 올린 모습이다. 전체 면적은 151만 5000㎡(약 46만 평). 이 중 산업용지가 39%이고, 공공시설·녹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53%로 다른 산업단지보다 높다.

이런 모습에 반한 젊은이들이 이곳에 꾸준히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서다. 우리나라 모든 산업단지가 바라는 청년 인력 유입을 비교적 손쉽게 이뤄낸 것이다. 그래서 일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약 5000명이 고용돼 있다. 이 중 여성이 40%(2000명) 정도인데, 여느 산업단지보다 높은 비율이다.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 전경.  

문화로 살찌우다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은 오는 12일부터 내달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열린 도서관인 '지혜의 숲'에서 '출판도시 인문학당'을 마련한다. 전문가들이 인문학 강연을 하고 이후 클래식 공연도 펼쳐진다. 최근 재단은 서재나 창고에서 잠자던 책을 모았다. 기증받은 책은 20만 권. 이 책을 비치해 문을 연 곳이 '지혜의 숲'이다.

일상적으로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크고 작은 행사가 다달이 또는 분기별로 열린다. 각종 북 콘서트(음악과 문학의 만남), 산업관광 프로그램(책 마을 해설과 체험활동), 전시회·심포지엄·공연 등이 잇따르는 아시아 최대 북 페스티벌인 '파주 북소리 축제'도 펼쳐진다. 단지 안에 주거공간과 게스트하우스, 쇼핑몰과 영화관도 있다. 단지 밖에도 파주와 일산지역 아파트, 전원주택 등이 있다. 일하는 공간도 있지만, 머무르고 쉬면서 즐길 수 있는 '다기능' 산업단지가 됐다.

최윤근 지사장은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는 업체마다 회비를 거둔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업체에는 더 많은 회비를 받기도 하는데, 이 돈을 노동자 셔틀버스 운행, 문화행사 개최, 단지 청소와 관리 등에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전했다.

파주출판도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건축 명소로도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전시됐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북 시티의 모델이 되고 있다. 2012년 아랍의 대표적인 문화상인 '셰이크 자이예드 도서상' 문화기술 부문 최고상, 올해 처음 생긴 산업통상자원부의 우수 디자인 산업단지 최우수상 등도 그 증거다.

수요자(기업)가 중심

파주출판도시의 민간 주체는 크게 3곳이다. 파주출판단지사업협동조합,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 조합이 단지 개발을 이끌고, 협의회는 조성을 마친 단지를 관리하고, 재단은 여기에 여러 지원책으로 문화예술을 입힌다.

파주출판단지 이기웅 이사장(전통문화·예술 전문출판사 열화당 대표)을 중심으로 출판·인쇄 업종 원로가 모여 이곳 단지 조성을 위한 사업협동조합을 80년대 중반부터 준비했다.

91년 조합이 꾸려졌고, 한강 폐천 터였던 현재 땅을 찾아 정부에 단지 조성을 해달라고 건의했다. 이후 단지 조성 계획이 94년 확정되고, 97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다.

이처럼 단지가 필요했던 기업인들이 스스로 먼저 나섰던 점이 차별된다. 보통 지자체가 산업단지를 만들어놓고 기업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과는 달랐다. 최 지사장은 "파주출판단지가 다른 단지와 구별되는 특징은 공급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수요자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 내 서점.  

출발부터 출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쇄 업종이 함께 단지를 채웠다. 단지 가운데에 놓인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출판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제조업인 인쇄 업체들은 대로에서 떨어져 자유로 가까이 나란히 있다. 북센이라는 출판물 종합 유통·물류회사도 있다. 현재 단지의 업종 비율은 출판 70%, 인쇄 25%, 나머지는 영상·소프트웨어·물류 등이다.

이렇게 한 장소에서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 팔 수 있는 구조가 구축돼 있다. 출판기획부터 인쇄, 유통까지 한 단지에 모여 생산비와 물류비만 연간 200억 원을 아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탄생 배경뿐만 아니다. 지금의 산업단지 모습을 갖춰나가면서 자율성과 합의 정신도 발휘한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업체 사람들의 힘 때문이다. 단지 외관을 가꾸고자 국내외 건축가 40여 명이 참여해 건물마다 이야기를 심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애썼다.

왕복 2차로 도로를 보행자 중심의 일방통행 도로로 바꿔 각종 문화 행사를 여는 '책방거리'도 수요자와 지자체가 협력해 얻은 결과물이다. 지자체가 지원했지만, 출판업체도 땅을 내놓으면서 이 거리가 생길 수 있었다.

특히 조합 안에는 건축심의위원회를 둬 엄격히 운영해오고 있다. 건물을 지으려면 관공서 건축허가 신청 이전에 조합 내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출판도시의 전체 그림을 흩뜨리지 않고 외관과 환경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었다. 설계비와 건축비가 최소 2∼3배 이상 쓰였지만 조합원 대부분이 이를 받아들였다.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내부 건축 심의와 같은 자율적인 합의가 오늘날 출판도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내 단지'라는 인식과 비전

파주출판도시는 국내 산업단지가 닮고 싶어하는 단지다. 사업비 2208억 원을 들여 조성된 산업단지는 1단계(1998∼2003년)와 2단계(2009∼2013년) 지구로 구분된다.

2단계 지구에선 올 11월 이후 업체들의 건물 착공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입주하거나 입주 계약을 맺은 업체는 451개사(1단계 339개사, 2단계 112개사).

지난해 생산액은 1조 5041억 원(출판 1조 2000억 원·인쇄 3000억 원), 수출은 인쇄업 중심으로 1370만 달러를 기록했다. 교보문고, 민음사, 웅진씽크빅, 열화당, 교학사 등 유명 출판회사 대부분이 들어와 있다. 102년간 4대째 운영 중인 주식회사 보진재는 이곳 대표적인 인쇄 기업이다.

하지만 출판업도 살아남기 어려워 건물을 쪼개 공간을 빌려주는 업체도 늘고 있다. 1단계 업체 중 150여 개를 제외하고 임차 업체라고 한다.

그럼에도 파주출판도시를 일컫는 '북 시티(Book City)'는 고유명사가 된 느낌이다. 이곳은 '주인이 있는 단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내 여러 산업단지 안에 있는 기업들이 '내 공장'이라는 생각은 강하지만, '내 산업단지'라는 인식은 약하다.

그러나 파주출판도시는 기업들이 기꺼이 돈을 모아 어린이집과 같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짓는 등 협력을 보여준다. '우리 산업단지'가 잘되는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울러 출판과 영상이라는 서비스업종이 조화를 이뤄 2단계 지구에서는 '책과 영화의 도시'라는 새로운 비전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출판역사박물관, 영상자료원, 도서관, 공공 주차장, 근로자 복지주택 등이 예정돼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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