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거의 십육 년 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처음으로 낯선 타지를 떠돌던 시절, 교직 발령 첫해나 그 이듬해에 만났던 까까머리 중학생들 중 한 아이였으니까.

손가락으로 지금까지를 헤어보니 한참 걸린다. 그래도 사오 년에 한번 꼴로는 머릿속으로 떠오른 이였던가. 살아오는 동안 그즈음을 떠올릴 때면 연이어 기억나던 이들 중 한 사람이었으니.

세월이란 그다지 긴 건 아닌 듯싶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십육 년 전 목소리와 함께 당시 기억과 감정도 단숨에 달려왔다.

반가운 전화에 내가 격앙된 음색을 감출 수 없었던 건 단순히 오랜만의 만남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모서리는 모서리끼리 만난다고 내가 가장 어리석고 부족했던 시절에 그 아이 역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으므로. 그러니까 참 어설픈 초짜 담임선생과 너무나 아슬아슬했던 소위 한 문제아의 만남이었기에.

마치 서로의 속살보기를 공유한 목욕탕 사람들의 어떤 연대감처럼 그렇게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이제는 그 아이가 멀리 있다가 아주 오랜만에 만날 친구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래도 기억이란 머릿속에 연대기적으로 차례차례 잘 쌓여 있는 서류철 같은 것이라기보다 어떤 감각과 함께 갑자기 순서 없이 닥쳐오는 해일 같은 것인지. 전화를 끊고 나는 얼마간 그 시절 기억과 감정 속에 매몰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더웠던 그해 여름, 지금 같은 중앙 냉방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교무실 한쪽에서 흐르는 땀에도 아랑곳없이 자못 심각해 있던 한 여선생과 남중생. 몇 주면 몇 주 몇 달이면 몇 달, 그해 여름 붉으락푸르락 그들의 표정은 내내 그렇게 지독했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자주 부끄러운 기분에 젖어드는데, 우습게도 당시엔 내가 많이 아는 듯 뛰어나게 성숙한 듯 잔소리만 엄청 해댄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보다 열 살밖에 많지 않았던 초짜 담임이 때로는 우습게 보일 만도 했을 테고, 어린 중학생이었지만 충동적으로 대들며 거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희한하게도 그 아이는 이 주변머리 없는 여선생의 냉정한 으름장이나 고루한 교육 방식을 잘도 받아주었다. 잦은 결석과 폭력 사건으로 말썽을 피우는 그 아이에게 나는 질릴 정도로 많은 벌 숙제를 줬고 그다지 말이 없던 그 아이는 다음날이 되면 충성스럽게도 꼬박꼬박 모든 숙제를 잘해 왔다. 아마도 대개는 많은 시를 외우거나 긴 소설을 대여섯 번씩 베껴 쓰는 힘든 일이었음에도 말이다.

   

지금 눈으로 보면 비록 방법은 서투르고 어리숙하기 짝이 없지만 이렇게 십육 년이 흘렀어도 우리가 서로 보고 싶어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딴에는 그해 여름 나의 방식이, 또 그의 태도가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고 또 순수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해 여름 그 시절 우리들 가슴엔 그런 순정으로 뻘뻘 흘리는 땀이 있었다.

/서은주(양산 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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