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이정석·도승희 부부

지난 5월, 경남도민일보 '자유로운 광고'에 결혼 소식이 실렸다. 이정석(40)·도승희(35) 커플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광고를 낸 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동문은 이 커플에 대해 '남자의 인간 승리'라고 표현한다.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15년 만에 결실을 이뤘기 때문이다.

둘은 1999년 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동기다. 남자는 군대까지 다녀온 후 입학했기에 여자보다 5살 많았다. 남자 마음이 여자에게 꽂힌 것은 첫 MT 때다. 다 같이 술 한잔 하는 자리였다. 여자는 바깥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뒹구는 신발 중에 가장 깨끗하고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남자도 밖에 나가려다 자기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여자를 보았다. 사과를 기대했는데, 아무 말 없이 휑하니 들어갈 뿐이었다. 남자 처지에서는 기분 나쁠 법도 했지만 오히려 당찬 매력을 느꼈다. 이 설렘이 이후 십수 년간의 마음 앓이로 이어질지는 몰랐을 따름이다.

이후 둘은 동기로, 오빠·동생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학년 2학기 때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남자는 호감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못 했다. 대신 주변을 통해 분위기를 몰아가는 식이었다. 여자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떳떳하지 못한 남자'라는 인식만 하게 되었다. 이후 여자는 쌀쌀맞은 것을 넘어서 매몰차게 대했다. 대학생활 내내 그랬다.

   

과 동기들 간 단합이 잘돼 졸업 후에도 둘 관계는 이어졌다. 남자는 여전히 마음만 품은 채,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11년 크리스마스 즈음, 여느 때처럼 과 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그날따라 유독 주변에서는 둘 사이를 엮으려 했다. 그런데 여자 마음이 이때는 좀 달랐다. 이성적인 감정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모를 애틋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남자가 안 돼 보이고, 챙겨주고 싶고 그랬다.

남자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후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남자는 경남, 여자는 서울에 있었다. 남자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서울에 갔다. 그리고 여자와 식사를 했다. 알게 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단둘이 하는 자리였다. 다음 주말, 또 그다음 주말, 남자는 계속 서울에 발걸음 했다. 어느 날은 '너 좋아하는 카페라테 한잔 하러 서울갈까'라더니 정말 불쑥 나타났다. 하지만 남자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단순히 지금의 시간에 만족하고 있었다. 여자는 이런 남자의 모습이 13년 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비겁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먼저 '지금처럼 좋은 오빠·동생으로 지내고 싶다'고 선을 그어버렸다.

그러자 남자는 눈빛이 변하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부 말할게'라고 했다. 지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여자는 기억도 못 할 작은 것까지 말이다.

'13년 전 여름방학 때 너 주려고 귤 두 상자를 샀어. 택배 부치려고 주소를 물어봤는데 너는 남의 주소를 왜 불어보느냐며 쏘아붙였지.'

'MT 갈 때 기차에서 마주 보며 앉게 됐는데 기억해? 네가 싫어할까 봐 무릎이 닿지 않으려 엄청 애썼는데, 딱 한 번 닿게 되자 엄청나게 화를 내더라.'

간직하고 있지 않던 이야기들을 들으니 여자는 마음이 짠했다. 한편으로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을 지금까지 안절부절못하게 했을까'라는 미안함도 들었다.

여자도 마음이 동요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계획 아닌 본능적인 밀당'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간 연락 없이 지내보면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도 약속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새벽녘 술에 취해 전화하기도 했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며 연애를 시작했다.

13년간 애타는 시간, 2년여의 연애, 마침내 지난 5월 24일 결혼식…. 남자는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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