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뇌병변 장애인 김형준 씨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외출을 서두르는 손길이 바쁘다. 창원 중앙동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오후 1시까지 2시간 남았다. 진해 자은동에 위치한 집에서 차량으로 20여 분이면 충분한 거리. 하지만 옷을 챙기는 마음이 급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과 발로 바지와 티를 갈아입는다. 신발을 챙겨 신고 현관문을 나서자 노란색 승합차 한 대가 반긴다.

승합차 옆문에는 파란색 글씨로 교통약자 콜택시라고 적혀있다.

"택시가 언제 올지 몰라 항상 약속시간 2시간 전에 미리 전화를 하는데 오늘은 빨리 왔네요."

휠체어를 탄 채 승합차에 몸을 실은 그가 어눌한 말투로 느리게 말했다. 뇌병변 2급인 김형준(22) 씨는 그렇게 이른 채비를 마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네 발로 만나다 = 태어나면서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신체적 장애를 가진 형준 씨. 몸을 지탱할 보조기구 없이 보행이 힘든 그는 초등학교를 네 발로 다녔다.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한 것.

일반초등학교에 입학한 그가 비장애 학생들이 혼자서 학교를 가듯이 자신도 스스로 힘으로 다녀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어머니가 차량으로 태워 줄 법도 한데, 오히려 네 발 자전거에 힘을 실어 줬다. 다른 사람보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 남들과 다를 게 없다며 형준 씨 머리와 가슴을 다독였다.

   

중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형준 씨는 네 발로 학교를 누볐다. 두 발 달린 휠체어에 형준 씨 두 발을 얹힌 것. 어렸을 때 네 발 자전거를 타며 키운 자립심은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교실을 이동해야 할 때에는 남보다 일찍 몸을 움직였고 계단에 부닥뜨리면 손잡이를 잡고 오르락내리락했다. 급히 이동해야 할 때나 불가피하게 혼자 움직이기 힘들 때에만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혼자서 해보려고 해요. 계속 도움만 받고 살다가는 평생 자기만의 방법을 못 찾을 것 같아서요. 최선을 다해 힘 써보다가 정 안된다 싶으면 도움을 청하죠."

덕분에 웬만한 계단과 턱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먼저 해보려고 하는 형준 씨. 손발이 부자연스럽다 하여 결코 마음까지 제약 받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 조금씩 세상 밖으로 =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은 관광을 하더라도 단체로 움직인다. 자신 때문에 행여 남이 불편할 까봐 나들이는 아예 엄두 내지 않는다. 형준 씨도 그랬다. 어딜 가더라도 시설이나 기관 지원으로 함께 움직였다.

누군가 보여주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세상. 직접 자신이 발로 뛰기로 했다. 이동수단은 장애인이 평소에 접할 기회가 없는 기차. 자신과 똑같은 뇌병변 장애를 가진 친구 한 명과 비장애인 친구 한 명, 그렇게 셋이서 지난 5월 첫 여행길에 올랐다.

당초 4박 5일 일정이었지만 형준 씨가 갑작스럽게 취업하면서 1박으로 대체됐다. 여행 코스는 따로 계획하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단지 목적지만 정했다. 바로 서울. 지하철이 잘 구축돼 이동이 수월할 것이라 생각해서다. 예상은 빗나갔다.

"에스컬레이터 한 번 타려면 수많은 인파를 헤쳐야 했고 엘리베이터는 휠체어를 들이밀기에는 작고 비좁았어요. 사람이 많은 만큼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죠."

   

내려오는 열차 안 창 너머 풍경에 시선이 한참 동안 머물렀다.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던 여정. 하지만 가슴 한편에 뭔지 모를 뿌듯함이 꿈틀거렸다. 누구 도움 없이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이었다. 자신이 지닌 신체 한계에 주저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형준 씨. 그는 느리지만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문을 두드려 봐도 = 아침 7시 30분에 눈을 뜬 그가 부지런을 떤다. 씻고 밥 먹고 외출복을 챙겨 입은 형준 씨를 기다리는 것은 활동보조인 차량.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시 이용한다.

형준 씨가 보장받은 활동보조 시간은 보건복지부와 창원시 지원을 합해 한 달 150시간이다. 150시간 초과 시 버스를 타든 택시를 부르든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저상버스는 노선이 많지 않고 사람들로 붐빌 때에는 오히려 휠체어를 타고 오르기에 민망하다. 주로 교통약자 콜택시를 부르지만 이 또한 이용자가 한 번에 몰릴 때면 차가 언제 배정될지 몰라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

형준 씨는 올 1월부터 주민센터에서 1년 계약직 행정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인 그도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

"커피숍에서 친구들 만나 수다도 떨고 시민생활체육관에서 수영도 하고 책을 보기 위해 서점에도 자주 가요. 그때마다 활동보조인을 대동할 수 없어요. 대기시간마저 활동보조 시간으로 적용해서 꼭 필요할 때만 찾게 되죠."

친구들 만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 그날 토요일 오후에도, 약속장소에서 1시간 넘는 기다림을 온전히 혼자서 견뎠다. 이용자가 많은 주말, 대기 순위에서 밀릴 까봐 약속시간 2시간 전에 미리 부른 콜택시가 그날따라 바로 배차됐기 때문이다.

여느 20대처럼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형준 씨. 그가 보고 느껴야 할 세상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사회는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달린다 = 평일 점심시간, 텅 빈 주민센터 한편에서 도시락을 꺼낸다. 직원들이 같이 밥 먹자고 손짓하지만 고개를 가로 젓는다. 주변에 식당이 없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속히 움직이지 못 하는 자신으로 인해 괜한 민폐를 끼칠까 도시락 싸기를 자청했다.

혼자서 먹는 밥. 맛도 없고 서러울 법도 한데.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되레 혼자 즐기는 시간으로 여겨요. 그러면 마음도 편하고 밥도 더 맛있어요."

   

장애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단 한 번도 비관해본 적 없다는 형준 씨. 2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해 복지관이 아닌 주민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도 장애 때문이 아니라 20대 누구나 겪는 취업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불편한 몸이 단지 신체 특징이라고 말하는 형준 씨도 스스로 장애가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위태롭게나마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오르거나 턱을 넘으려고 할 때 "집에나 있지, 왜 나와서 고생이냐"고 던지는 편견 섞인 말이다.

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22살 청년 김형준으로 보이고 싶다는 그에게 최소한 마음의 장애는 없다. 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장애가 있을 뿐. 형준 씨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해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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