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22) 경기 수원시 수원화성·화성행궁

조선 후기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평가되는 정조대왕. 최근 영화 <역린>을 통해 다시 회자하기도 했지만 정조만큼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진 인물도 드물다.

아무리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 해도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비운의 사도세자와 그를 기리는 효심 지극한 아들 정조의 슬픈 역사가 살아 있는 수원화성.

조선 제22대 정조가 1794년 1월에 착공해 2년 9개월 만인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으로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원화성.

용재를 규격화하고 당시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겨 거중기 등 신기재를 이용해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했다.

200년 세월이 흐르면서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됐다. 그러나 축조 상황을 기록해놓은 '화성성역의 궤'에 따라 1975년부터 보수·복원해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따가운 햇볕은 거칠 것이 없다. 하늘과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린 날이다.

수원화성을 출입하는 4개의 문 가운데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 앞에 섰다. 목을 있는 힘껏 젖혀도 그 웅장함을 담을 수 없다. 장안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의 안녕을 의미한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 밤낮의 경계도 없이 바삐 움직이는, 화성을 요리조리 피해 도로를 만들고 경적 소리가 울리는 지금 이 광경을 200년 전에 상상이나 했을까.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할 당시 "화려하게! 아름답게!"를 강조했다고 한다. 한 신하가 "적을 막아내려면 튼튼히 쌓으면 되지,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려하게 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정조가 말하길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이기느니라"라고 자애롭게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미학을 중시한 건축물, 수원화성 그 위를 걷는다. 모두 48개의 군사 시설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41개만이 남아 있다. 사방 100리가 한눈에 보이는 장대는 서장대와 동장대 2개소로 이루어져 있다.

수원화성의 군사지휘본부 격인 장대부터, 대포 발사를 위해 구멍을 뚫은 돌을 놓아 만든 포루, 비상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시설인 봉돈 등 치밀하게 설계된 군사 시설물로서 위용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무대를 지나 잘 닦인 산책로를 걸어 임금이 능 행차 때 거처하던 임시 궁궐인 화성행궁 앞에 섰다.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시읍치 건설 때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돼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화성 축성 기간에 화성행궁으로 확대해 최종 완성됐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부친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고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서 유숙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봉수당, 화성행궁 안에서 활을 쏘던 곳으로 모두 명중시켰다 하여 지어진 득중정,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 노후 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노래당 등 총 657칸으로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

화성행궁 장용영수위의식 모습.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낙남헌을 제외한 대다수 시설이 사라졌다. 1980년대 복원운동이 펼쳐졌고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마침내 화성행궁 1단계 복원이 완료돼 2003년 10월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갑자기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에서 무예 24기 공연이 열리기 10분 전이다.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자 이덕무, 박제기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조선 전통의 무예와 중국,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만든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이자 정조 시대 조선의 최정예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익혔던 24가지 실전 무예 공연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슬픔을 딛고 역사를 품고 새 세상을 꿈꿨던 정조의 뜻이 담긴 수원화성. 아름답고 강력한 성을 지으며 정조가 그토록 염원했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군사 방어력과 백성들의 평안한 생활까지 바랐던 조선 후기 최고의 건축물 아래서 그 뜻을 헤아려 본다.

화성열차

<Tip1>

수원화성을 찾았다면 무예 24기 공연(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월요일 제외) 신풍루 앞)과 함께 정조대왕이 있는 화성행궁을 지키는 수위의식 및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을 보여주는 장용영수위의식(4∼11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신풍루 앞)을 놓치지 말자.

<Tip2>

팔달산과 화서문, 장안공원, 장안문을 거쳐 화홍문과 연무대를 오가며 수원화성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성열차도 꼭 타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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