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사천시 전 총무국장 이종순 씨

사천시청 이종순(58·사진) 총무국장이 퇴직 2년을 남겨두고, 지난 6월 30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권력과 명예가 보장된 최고위직 공직자가 2년여 잔여 임기를 두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미련없이 후배들을 위해 물러난 것이다.

지난 1976년 1월 1일 고성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 국장은 1980년 삼천포시로 이사를 했고, 자리도 삼천포시청으로 옮겼다. 당시에 동좌동(선구동에 통합됨)에서 근무했는데, 일명 동서기가 그의 직책이었다.

이 국장은 고성군 삼산면에서 태어났지만, 친척이 많이 모여살고 있는 삼천포시가 사실상 생활 연고지였다. 무엇보다 빈농에서 태어나 아주 극심한 가난이 싫었던 아버지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이 국장도 어린시절 솔잎을 먹고 허기를 채웠다고 한다.

이 국장은 8급 때 동료보다 6개월가량 늦게 7급으로 승진한 일을 인생 최대의 터닝포인트(전환점)로 꼽았다. 공직입문 시기가 비슷한 동료 16명이 7급으로 승진했는데, 이 가운데 14명이 자신보다 순서가 늦었지만 먼저 승진한 것이었다.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결국,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단하게 노력한 끝에 6개월 뒤 7급으로 승진했고, 6급 승진부터는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서기관(4급) 승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출신지역이 고성인 그로서는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를 최고위직에 올려놓은 것은 업무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과 '서로 믿고 책임을 다하자. 신뢰와 성실이 있어야만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그의 좌우명이 한몫을 거들었다.

도로과장 때의 일이다. 사천시가 포장마차 정비사업을 시작했는데, 5번째 추진하는 것이었다. 4번째까지 연속 실패할 정도로 포장마차 업주들의 반발은 거세고 강력했다. 시장실 항의방문, 협박, 난동은 늘 있는 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고. 이 국장은 직원들과 함께 저녁마다 홍보활동에 나섰고, 맨투맨으로 업주들을 설득했다.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정돈됐다.

그리고 3년 8개월을 맡았던 동서동장 때도 태풍 루사, 매미 내습에 따른 피해복구, 동서동사무소 신축, 국도 3호선 공사 등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 때문인지 동서동 주민들은 지금도 찾아주고 반겨준다고 한다. 이 국장 역시 동서동이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들을 바탕으로 이 국장은 지난 2010년 2월 서기관으로 승진하게 됐다. 그야말로 승승장구. 그런데 올해 초 '사천은 국장직이 3개뿐인데,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지난 3월 초 장모의 팔순잔치 때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26살 때 연애 결혼한 아내 이외선(59) 씨와 1남 1녀의 아들, 딸 등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보통 퇴직을 1년 남겨두고 물러나는데, 2년 정도를 남겨둔 상황에서 명퇴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던 가족들도 이 국장의 큰 결심, 좋은 뜻을 받아들였다.

지난 4월에는 김주명 부시장에게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선거기간 중이기 때문에 보안유지를 부탁했다. 이로 인해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선거 투표를 일주일 남겨둔 상태에서 총무과에서 공로연수자와 명퇴신청자 결재를 올린 것. 이 국장은 37년 8개월이라는 공직생활의 노련함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결재를 선거 뒤로 미뤘다가 선거가 끝난 직후 자신이 포함된 명퇴신청자 결재를 처리하도록 했다.

이 국장은 지난 6월 30일 4년 6개월의 국장직과 37년 8개월의 공직생활에서 물러났다. 이 국장은 "사심없이 일을 했지만, 후배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며 "1년간은 푹 쉬고 싶다. 일단 가정을 돌보고 싶다. 그동안 가정보다는 업무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선 6기를 이끌 시장은 시민들이 감동할 수 있는 시정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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