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장면이 겹친다. 강원도 고성군 GOP(일반전초)에서 임모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터지자 전방 부대의 비인간적이고 강도 높은 근무 환경이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실탄으로 무장한 임 병장의 도주와 군 당국의 추격전이 시작되니 이번엔 좀 다른 소리가 들렸다. 병력을 대거 투입했음에도 임 병장을 제압하기는커녕 자기들끼리 총을 쏘는 등 문제만 더 일으키자 '군 기강 해이' '당나라 군대'라는 질타가 쏟아진 것이다.

둘은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일까? 어떤 때는 총탄이 날아드는 위험 속에서도 온갖 무기를 제 몸처럼 다루며 작전을 척척 수행해내는 델타포스 같은 군대를 원하고, 또 어떤 때는 한 사람의 '왕따' 없이 모든 병사가 늘 편안하게 화기애애하게 근무할 수 있는 군대를 바라는 현실. 만일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자식이 임 병장 소속 부대나 추격대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했을까. 아니, 그전에 만약 운 좋게(?)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위선자가 되거나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동참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 기괴한 게임.

이제 그만 멈출 때가 되었다. 임 병장 같은 소위 '관심 사병'만 수만에 이르고 길어야 2년도 채 안 되는 "탈영병 한 명 제대로 못 잡는" 훈련 수준으로 지탱하는 이 어설픈 조직에 뭘 기대하는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따질 것 같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등 가공할 만한 군사력을 지닌 열강의 이해관계로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 한반도다. 전면전은 곧 파멸이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억지로' 끌려가 '꾸역꾸역'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수십 만 장병의 운명은 총알받이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강원도 고성군 GOP 총기난사 사건 때 숨진 김모(맨 앞줄 가운데) 하사가 지난겨울 장병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이 화기애애해 보이는 현장이 얼마 안가 비극의 현장으로 돌변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연합뉴스

무엇보다 현재의 강제 징집은 억압적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는 폭력적인 훈육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은 군대식 질서와 조직 문화로 일을 부리고, 공장을 가동하고, 이윤을 창출하고, 국민들에게 순응과 인내를 강요한다. 상명하복식 소통 구조, 저임금·장시간·비정규직 노동, 노동권 무력화, 질 낮은 사회복지 이 모든 걸 참고 버티게 하는 주요 원동력이 바로 군대다. 최악의 근무 조건에 말도 안 되는 임금을 주며 무려 2년 동안이나 사람을 잡아가두는 제도가, 어떻게 국민 행복과 창조경제를 노래하는 이 시대에 버젓이 합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단 말인가.

총기난사 같은 어이없는 비극을 막고 국방력도 튼튼히 하는 유일한 길은 군 복무자에게 그만큼의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뿐이다. 강인한 군인 정신이니 관심 사병이니 얄팍한 말장난 따위로 혹독한 환경을 이겨낼 수는 없다. 징집한 청년들에게 충분한 '노동'의 대가와 인간적인 삶을 제공할 자신도 여력도 없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진지하게 모병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후 누구는 '국가 개조'를 말하고 또 누구는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다. 무엇이든 좋다. 모병제 전환은 곳곳이 모순투성이인 이 나라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는 힘이 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생명 중심의 공동체는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여 "군대를 가야 사람 된다" "세상 물정 알게 된다" 같은 논리로 또다시 비극에 눈감는 어른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을, 자기 자식을 평생 노예 신분으로 살게 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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