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5) 사천 다솔사, 창선·삼천포대교와 늑도 바닷가

6월 14일 사천 일대에서 진행된 생태체험은 마산 호계지역아동센터와 큰샘원지역아동센터와 함께했다. 두산중공업의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체험·탐방 프로그램 제공은 아주 뜻깊은 구석이 있다. 산 내 들 바다에 나가거나 문화유산 따위를 찾아보려 해도 모두 시간과 돈이 들게 돼 있어서 잘사는 축들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은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런 '기회의 불평등'을 두산중공업이 창원에서나마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셈이라 하겠다. 이날 일정은 오전에 다솔사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는 바다 위에 난 멋진 다리인 창선·삼천포대교를 걸어 늑도에 들어간 다음 갯가에서 어울려 노니는 식으로 짜였다.

다솔사는 사천에서 보물 같은 존재다. 예로부터 잘 가꿔온 솔숲이 들머리에서부터 좋고 요즘 들어 새로 심은 듯한 삼나무들도 둥치를 키우며 하늘로 솟고 있다. 조선 고종이 1885년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라 써 붙여 무덤을 쓰지 못하게 한 적이 있는데 솔숲은 그 덕분이지 싶다.

신라시대 지어졌다는 이 절간은 전통차,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기지, 불상을 모시지 않은 중심 전각(적멸보궁) 세 가지로 이름나 있다. 지금은 전통차가 유명한 하동과 보성(전남)에서조차 아무 움직임이 없을 때 사천 다솔사에서는 둘레에다 차나무를 심고 가꿨다. 사천 출신인 최범술 효당(曉堂) 스님이 여기 주지로 있으면서 펼친 사업인데 절간 뒤편 언덕배기가 두루 차밭이다.

다솔사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점도 다른 절간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중심 전각 이름이 '대웅전'이 아닌 '적멸보궁'이고 그 안에는 또 불상이 없다. 대신 보궁 벽면에 구름 모양 창을 내고 뒤뜰에 진신사리가 들어 있는 탑을 세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진짜 부처(진신)가 있으니 가짜 부처(불상)는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첫 여행지인 다솔사 적멸보궁으로 올라가고 있다.

다솔사는 또 일제강점기 항일민족운동에서 불교쪽의 중요 거점 구실도 했다. '님의 침묵'을 지은 만해 한용운이 여기 살면서 여러 자취를 남겼다. 여기 있는 응진전은 만해 한용운이 고쳐 지은 절간이고 안심료 뜨락에는 한용운이 환갑을 맞은 기념으로 사람들이 심은 황금공작편백도 세 그루 있다.

이런 얘기를 마산에서 사천 가는 버스 안에서 간단하게 들려주고는 1시간쯤 지나 내릴 때 아이들이 얼마나 잊지 않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 번 물어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나름대로 기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만해 한용운요"라든지 "부처님이 없어요"라든지 "차나무요"라든지 단초들은 새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도면 훌륭하다. 다음에 추억을 되살릴 근거는 마련이 된 셈이니까.

응진전 앞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는 선생님.

다솔사 앞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에는 여덟 모둠으로 나눠 두산 사회봉사단 선생님들이랑 함께 미션 수행을 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차밭 한가운데 있는 나무 이름을 맞히게도 하고 적멸보궁에서 절하면서 기리는 대상이 무엇인지나 만해 한용운과 관련되는 나무가 몇 그루인지도 알아보게 했다. 다솔사에서 볼 수 없는 것도 찾아보도록 했는데, 그것은 적멸보궁 불상과 석탑·석등, 일주문과 사천왕(문)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무그늘이 내려앉은 들머리 계단에 모여 문제풀이를 겸해 간단한 게임을 한 다음 좋은 솔숲을 걸어 내려왔다. 선생님은 길라잡이 구실만 하고 아이들이 직접 답을 찾게 했는데도 열 문제 모두 맞힌 모둠이 다섯이었고 나머지도 한둘밖에 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다솔사 차밭을 걷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한 시간가량 재미나게 노닐고는 다음 창선·삼천포대교 들머리 친환경 밥집인 소예정에 가서 출출해진 배를 채웠다. 아이들인데도 기특하게 갖은 나물 반찬과 된장을 즐겨 먹어 한결 반가웠다. 이어서 바다 위 다리 걷기. 창선·삼천포대교를 이루는 다리 넷 가운데 삼천포대교·초양대교·늑도대교 셋을 걸어 늑도까지 가는 길이다. 이렇게 다리 위를 걸으면 자동차를 타고 스쳐지나가는 것보다 좀더 많이 누릴 수가 있다. 시원한 바람은 기본이고 해류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며 햇살에 젖어 있는 바닷물을 갯내음 맡으며 눈에 담는 것이다. 날씨가 조금은 더웠지만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얘기를 나누고 장난을 친다.

다음 일정으로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는 모습.
늑도로 가기 위해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고 있다.

늑도마을 조그만 고기잡이 항구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마음이 바쁜 아이들은 부두 옆 갯가로 벌써 나갔다. 그래 여기보다 아주 좋은 갯가에 갈 테니까 어서 나오라고 하니 흩어진 아이들이 다시 모인다. 마을 앞을 지나 구석에 다다르면 아이도 어른도 다함께 놀기 좋은 그런 갯가가 크지도 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들어가기도 전에 함성부터 내지른다. 성질 급한 친구들은 내달려가기도 한다. 크고 작은 바위를 뒤집어 게와 조개를 잡는다. 이런 것들을 담아두기 위해 버린 물병을 다시 갖고 오는 모습도 보이고 잡은 것들을 서로 보여주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여행지 늑도에서 갯가 체험을 하는 아이들.
늑도 갯가에서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

물결과 바람에 이리저리 파여나간 바위도 살펴본다. 여기 바위들은 마치 무르거나 단단한 성질이 서로 다른 자갈과 모래를 섞어 반죽한 콘크리트 같아서 그 표정이 다른 바닷가보다 좀더 다양하다. 이렇게 한참을 놀다가 지치기 전에 발길을 돌렸다. 즐겁게 놀아서 뿌듯해하는 표정 사이로 아쉬움이 살짝 스친다.

앞서 다솔사에서 버스 타고오는 장면에서는, 지금 한 번 들었다가 나중에 기억이 나면 써먹게 할 요량으로 늑도유적 이야기도 들려줬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청동기시대 국제무역항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 일상에 썼던 유물도 나왔지만 낙랑·중국·일본처럼 바깥에서 들여온 유물도 엄청 쏟아진 데다. 국제적으로 여러 집단이 함께 살았는지 무덤에서 나온 주검들은 형태가 여럿이었다. 똑바로 누운 사람, 옆으로 누워 팔·다리를 오무린 사람·엎어져 있는 사람·개와 함께 있는 사람 등등. 늑도는 지금이나 그때나 논농사가 안 되는 지역인데도 불에 탄 쌀까지 나왔다. 늑도에는 바깥에서 들여온 쌀을 먹으면서 무역을 전문으로 하거나 물품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 있었던 것이다.

2200~2100년 전 일인데도 말이 길지 않았던 때문인지 아이들도 대체로 귀기울여 들었다. 아이들한테 한 토막이라도 저장이 되면 그만이다. 세월이 흐른 뒤 여기를 다시 찾았을 때 어렴풋이라도 떠올라지면 좋은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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