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 늘 계획하는 것이 무산된다. 뉴질랜드의 둘째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노느라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캠퍼밴(Campervan·캠핑카의 올바른 명칭)에 올랐다. 제일 먼저 어제 일몰 장소였던 푸카키 호수로 갔다.

더없이 펼쳐진 호수 앞에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에겐 언제 어디서든 요리할 수 있는 캠퍼밴이 있고 그 앞에 멋진 풍경과 무료로 제공된 테이블이 있다. 더 중요한 건 우리는 아침 식사 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친구와 나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곳은 순식간에 우리만의 브런치 장소가 되었다. 이내 식탁이 차려졌고 천천히 음식과 풍경을 음미하며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곧 매서운 바람이 우리 뺨을 때렸다. 빨리 길을 나서라는 의미인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난밤 라이언이 추천해준 마운틴쿡으로 향했다. 트레킹을 하면 약 3~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30㎞는 달린 것 같은데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전한 방향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30㎞를 생각하면 60㎞나 잘못 온 셈이 된다.

그래도 어쩌랴 이것이 여행인 것을. 다시 방향을 돌려 마운틴 쿡으로 달렸다. 꼬불꼬불 한참 달려 마운틴쿡 협곡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트레킹을 시작할 때 이미 많은 사람이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대신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해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갈 수 있는 만큼만 갔다 오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도 '조금만 더' 하며 더 깊숙이 들어갔다.

이제 돌아오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5시가 넘어가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초반에 봤던 풍경이 지겹도록 계속되자 돌아가는 일행을 붙잡고 끝까지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별것 없으면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끝에 호수와 이미 많이 녹았지만 빙하가 있다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호수가 있었고 정말 빙하가 녹아 둥둥 떠 있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친구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몰 시각이 거의 다 되어 플래시도 없이 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잠시 넋을 잃고 하염없이 그 속에 빠져 있기로 했다. 시간에 쫓겨 이 멋진 풍경들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마운틴쿡에 도착해 그 멋진 끝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오늘 저녁은 언제 먹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어떻게 돌아올 것이며 숙소는 어떻게 잡을 것인지 등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체념했을 때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깜깜하지 않아 플래시가 필요하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평소 가장 많이 쓰기도 하고 매 순간 나에게나 타인에게 해주고 싶었던 영어 단어가 생각났다. No Problem!(아무 문제 없어!)

/김신형(김해시 장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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