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역사지킴이 진분선 할머니

"역사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합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받고 죽음에 이르렀습니까. 이 속에 3·1만세운동은 우리 국민에게 매우 소중한 역사적·정신적 자산입니다. 내가 사는 곳에 이렇게 소중한 역사를 기록해 둔 기록물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홀대받는 사실이 너무 분했습니다."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두럭어린이공원. 이 공원에는 '창원읍민 만민 운동비'가 있다. 이 비는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계기로 옛 창원(의창동 지역)에서도 3월 13일과 4월 2일 장날을 이용해 당시 지역민 6000~7000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저항한 애국정신을 되새기고자 지난 1985년 10월에 세워졌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이 비는 그러나 지난 십수 년 동안 관리가 소홀해 글씨가 지워져 알아볼 수 없었다. 비석 주변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넘쳐났고, 오전이면 밤새 술에 취한 사람들의 방뇨로 악취가 진동했었다. 진분선(75) 할머니는 이 비가 이렇게 홀대를 받는다는데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에는 홀로코스트 추념비가 전국 도시 곳곳마다 세워져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만큼 관리도 철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뭡니까. 일본에 당한 아픈 역사와 선조들의 당당한 기개를 잊지 말자고 세워둔 비석을 이렇게 방치해서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십수 년 동안 관리가 소홀해 글씨가 지워져 알아볼 수 없었던 창원읍민 만민 운동비가 진분선 할머니의 노력 끝에 제 모습을 찾았다. /김두천 기자

비석에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터져나온 우렁찬 만세의 함성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이곳 천주산 기슭 유서 깊은 창원읍에서도 진동했다. 자유는 강산의 어둠 속에 눈을 떴고 독립은 겨레의 가슴 속에 샛별처럼 빛났다 (중략) 우리는 님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겨레 사랑의 높푸른 정신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온 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고 적혀 있다.

지난 2007년 이를 본 진 할머니는 흐트러진 지역 내 역사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창원시에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였다. 창원시는 국가보훈처 시설이라 시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뒤이어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문을 두드렸다. 단순히 민원 제기로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긴 편지글을 써 보냈다.

'일제강점기 강제 근로 정신대 연행 704만 명, 원자폭탄 피폭자 7만 명, 동원 정신대 군 위안부가 알려진 것만 20만 명에 가깝습니다. 3·1독립만세 참가자는 2만 3098명으로 이 중 부상은 1만 5961명입니다. 만세운동 진압에 일본군 5만 7592명이 군홧발로 집안에까지 침입해 선조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갔습니다. 이 만행으로 7509명이 사망했습니다. 만세운동은 총칼로 제국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후손에게 이를 알리는 상징물에 동네 사람들은 온갖 쓰레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친일파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진 할머니의 진심어린 나라사랑에 국가보훈처와 창원시가 움직였다. 지난 2010년 말 정화작업에 들어가 2011년 새단장을 마친 것이다. "이 일로 국가보훈처 사람들이 두 번이나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신들도 소홀한 부분을 잘 지적해줘서 한편으로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요."

진 할머니의 투철한 역사의식은 집안 내력에 근원이 있다. 진 할머니 큰오빠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에 끌려가 모진 생활을 했다. 18세 때 일본에 끌려 간 뒤 40년이 넘게 지나 60세가 되어서야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민단에서도 일본 내 핍박받는 한국인을 돕는 일을 한 오빠는 몸소 느낀 역사의식의 소중함을 전해줬다. 둘째 오빠는 한때 자유언론 투쟁을 벌인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며 역사 관련 책을 다독했다. 나머지 세 오빠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공으로 국가유공자가 됐다.

이들을 보며 느낀 역사인식이 오늘날 진 할머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 할머니는 창원읍민 만민 운동비같이 이런 역사를 기억하는 장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은 광장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희생자 이름을 낱낱이 기록해 참배하는 공간을 많이 만듭니다. 폴란드에는 아우슈비츠에서 1500명을 구한 신들러 공장 박물관이 있죠. 이곳을 전 세계 사람들이 와서 많이 보고 갑니다. 우리는 800만이 참혹하게 죽었는데 이 아픈 역사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 할머니에게 최근 낙마한 문창극 총리후보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이 말대로 모든 게 하늘의 뜻이라면 나치 유대인 학살과 일본의 위안부 만행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자가 총리에 추천받을 수 있는지 위정자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