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밀양, 이제는…] (4) 커지는 탈핵 목소리

"환경단체가 '탈핵'을 수십 년 동안 외쳤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밀양 어르신들 덕분이다."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염형철(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집행위원장이 지난 1월 2차 밀양희망버스 정리집회 때 한 말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대규모 발전시설과 전력 다소비지인 수도권으로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한 장거리 송전, 그에 따른 지역의 희생을 사회문제화했다. 특히 그 근원인 핵발전소 문제로 확대됐다.

수요관리가 아니라 공급위주 에너지정책은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발전소와 송전선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노후원전 수명연장과 신규원전 건설로 전력생산에서 핵발전 비중을 더 늘려가고 있다.

◇밀양에서 탈핵으로 = 밀양 주민들은 10년째 저항하면서 전국에 건설된 765㎸ 선로를 따라 무너진 마을을 찾았고, 현재의 안전성문제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 큰 짐이 될 핵발전소 문제도 알게 됐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외부세력'들이 시골노인들을 부추겨 송전탑 사업을 망치고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핵발전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 행사 때 '세계는 후쿠시마에서, 한국은 밀양에서 탈핵을 배운다'는 기치를 내걸었을 정도다. 후쿠시마 사고와 밀양 사태는 탈핵의 목소리로 옮겨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 6·4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노후원전 폐쇄와 신규원전 취소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밀양 송전탑은 고리1~4호기 노후원전을 예정대로 가동중단하게 된다면 필요하지 않다"며 "안전 문제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는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폐쇄에 주민들이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3주기 탈핵문화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 중지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DB

◇안전·경제성 없는 핵발전 = 후쿠시마는 핵발전소 사고가 얼마나 큰 재앙인지 그대로 보여줬다. 그런데도 정부가 핵발전을 고수하는 이유는 '경제성'이다.

그러나 '싼 전기'는 허구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해체비용과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 사고 비용 등이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37년째 수명연장 가동 중인 부산시 기장군 고리1호기, 연장검토 중인 경북 경주시 월성1호기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마이너스라는 분석도 나왔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고리1호기 이용률 80%, 해체비용 6033억 원(산업부 2012년 고시)으로 다시 분석하면 수명연장에 따른 적자 규모가 1조 635억~1조 3209억 원이라 분석했다.

원전중단은 세계적 흐름이다. 국회예산처는 지난해 <해외 원자력발전 및 방사성폐기물 처리관련 규제 사례연구> 보고서를 통해 원전비용이 증가하면서 경제성이 떨어져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비용 증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에 따른 것이다. 또한 유지·보수비용과 핵폐기물 처리, 노후원전 폐쇄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전 비중을 29%로 늘려 현재 가동 중인 23기에 더해 핵발전소를 41개까지 지을 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양이원영 처장은 원전확대정책에 대해 △원전확대와 전력소비급증 악순환 △전기의 비효율적인 이용 △높은 원전 밀집도와 사고위험 △지역갈등과 지역민 건강피해 △부정의와 불평등의 전력공급체계 등의 문제점을 꼽았다.

◇정책과 제도 변화로 = 그렇다면 원전 감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전 세계에 149기가 폐로됐는데, 평균 가동연수는 23년이다.

예산처는 최근 <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21년 전력설비 예비율이 30.5%인 점을 들어 "2020년 이후 신규 가스화력발전소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 않으므로 가스화력발전소를 보강하면 전력설비 예비율은 이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원전 준공과 신규 도입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국수력원자력이 해체비용을 부채로만 산정하고, 돈으로 적립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해체비용과 폐기물처분 비용을 모두 합하면 12조 원에 달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폐로 경험이나 기술도 없다. 원자력안전법에도 해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수명연장 가동 중인 핵발전소 폐쇄와 수명연장 차단을 핵심으로 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원자로를 건설·운영할 때 해체계획서를 허가·승인 받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원전중심 에너지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제2·3의 밀양사태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대책위는 지난 투쟁에 대해 "철옹성 같던 핵마피아, 전력마피아들의 독재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무엇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인식,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와 안락이 감춘 비참하고도 서글픈 민얼굴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밀양 주민들은 잘못된 에너지정책과 송·변전시설 주변 보상·지원법, 전기사업법, 전원개발촉진법 등 제도를 바꿔나가는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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