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 송전탑 건설 강행 과정에서 정부, 한국전력, 경찰 등이 밀양 주민에게 가한 것은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만이 아니었다. 국가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 못지않게 당근책으로 주민을 지속해서 회유했다. 많게는 10억 원의 마을지원금이 생긴다는 말이 돌자, 견고하던 마을공동체가 사분오열하면서 주민 간 반목이 깊어지면서 평화롭던 모습을 잃고 만 것이 지금의 밀양 송전탑 공사 마을들이다.

마을 주민 증언으로는 한전이 마을의 몇몇 사람을 회유하여 합의서에 도장을 찍게 함으로써 송전탑 찬성 마을로 둔갑시킨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마을 주민이 한전의 설명회에 갔더니 합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돼 있거나, 한전 측 회유로 주민대책위원장이 바뀌기도 했다는 국회 증언도 나왔다.

결국 밀양 주민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글대로 "사촌 간에 말을 하지 않고, 집안 간에 이웃 간에 서로 원수가 되어"버린 마을이 돼버렸고, 주민 간 고소·고발도 속출했다. 사업이 중단될 경우 지원금을 회수하겠다고 정부가 엄포를 놓는 바람에 송전탑 반대 주민이 찬성 주민으로부터 받는 압박도 극심하다고 한다. 또 마을지원금도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있는 주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금전적 보상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이 법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 것도 문제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은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에 주민지원사업, 주민복지사업, 소득증대사업 등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피해 지원을 결정하는 데 주민 참여가 봉쇄된 이 법은 주민 갈등을 유발하는 진원지로 지목된다.

정부가 금전적 보상을 통한 회유책으로 마을 주민을 반목하게 만들어 공동체를 파탄 나게 하는 것은 해당 주민이 반발하는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반복해 온 일이다. 정부는 주민이 와해된 틈을 노리겠지만, 밀양의 경우에는 정부 뜻대로 될지 의문이다.

'탈핵 운동의 성지'로 떠오른 밀양은 주민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다. 대학생 농활단은 농번기에 일손을 놓친 주민을 돕고 있으며, 시민의 지지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송전탑 반대 싸움을 쉴 수 없고 무너진 공동체도 다시 일궈야 하는 밀양 주민에게 견고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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