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밀양, 이제는…] (3) 무너진 공동체에서 희망을

최근 한국전력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가 <경남도민일보>를 포함한 몇몇 언론에 기사화됐는데, 그 내용은 여수마을(밀양 상동면)과 한전이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한전은 여수마을 복지회관에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지원하고 노후 싱크대와 보일러를 교체해 주었으며, 마을 주변 쓰레기를 줍는 등 농촌일손돕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기사에는 '상동면 여수마을은 송전탑 공사 반대를 시작한 최초의 마을이며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반대해 오다 지난달에 다수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소개됐으며, 한전이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계획도 언급되고 있다.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26일 상동면 여수마을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공)기업과 농촌 마을이 자매결연을 하면 자매결연식 당시 사용했던 현수막이 마을회관에 걸려있기 마련인데, 이날 여수마을 회관에는 자매결연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은 볼 수 없었다.

한 주민은 "그날 와서 사진 찍은 사람들은 한전 직원들하고 밀양시에서 동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마을 주민도 한 7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 자매결연 소식을 듣고 항의하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갔더니 도망치듯 빠져나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영자 상동면 송전탑 반대대책위 총무가 26일 오전 자택에서 한전의 합의 정책으로 마을 공동체가 복원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며 한숨을 짓고 있다. /임채민 기자

그러면서 "주민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걸 한전이 알고 있어 참말로 고맙다"고 비꼬면서 "그런데 한전이 지금 하는 일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아니라 아예 우리보고 이 동네에서 살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날 아침 자신의 농장에서 자두 서너 상자를 따서 집으로 돌아가는 상동면 송전탑 반대 대책위 김영자(여·58) 총무를 만났다. "동네 꼴이 참 우습게 돌아가고 있다"는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몇몇 사람이 모여서 동네 일을 결정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준 할매들이 '와 우리가 모르는 일을 저 사람들 마음대로 해 샀노'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하소연을 한다. 합의하고 돈을 받는 것도 개인의 권리고, 끝까지 송전탑을 반대하면서 투쟁을 하는 것도 개인의 권리 아니냐. 또 고생하신 분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위로금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한전이 몇몇 사람들과 돈으로 벌이는 합의는 동네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김영자 씨는 이어서 "마을이 이렇게 깨질 줄 몰랐다"며 "시간이 흐르면 갈등이 봉합되고 그래도 같이 살아갈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제 이 갈등이 우리 대에서는 어림도 없고 대물림이 될 것 같아 잠이 안온다"고 말했다.

여수마을 주민들은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해 마을 안에 다시 송전탑 반대 투쟁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공간은 여수마을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오는 연대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역할도 하게 된다. 김 씨는 다시 서는 투쟁 거점에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팻말을 붙일 계획이라고 했다.

허무하게 농성장이 무너지고 마을공동체는 부서지고 있지만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아직 굳건했다. 여수마을뿐 아니라 위양, 평밭, 용회, 동화전, 고답 마을 등에서 농성장이 다시 들어설 계획이다.

'4대강 따라 원전까지'라는 기치로 서울에서 출발한 7명의 청년들이 26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입구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에 도착했다. /임채민 기자

하지만 마을 공동체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많게는 10억 원에 이르는 마을 공동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마을 총회 등을 거치지 않고 몇몇 사람이 이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한전에서 받은 마을 공동자금을 관리하는 모 '마을 대표단' 중 한 명에게 마을 공동 자금 사용 계획이 무엇인지 문의했으나 "잘 준비하고 있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하면서 취재를 거부했다. 이런 반응은 거의 모든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한전과 합의를 안 했고, 합의를 했더라도 고령인 노인들은 마을에 '뚝 떨어진' 수억 원의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끼리 벌이는 고소·고발 건이 계속 쌓이고 있고 또 쌓일 예정이다. 사실상 무너진 마을 공동체가 다시 복원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옳은 상황이다. 송전탑 대책위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또 힘겹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고, 계속해서 밀양을 찾는 여러 연대자들을 반기고 있다. 지금 밀양에는 전국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생명·평화·초록 농활단 100여 명이 각 마을에서 농촌 일손돕기를 하고 있다.

26일 단장면 용회마을에서는 '4대강 따라 원전까지'라는 이름을 내걸고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청년 7명이 도착해 주민들과 함께했다. 용회마을 주민들은 농성장이 무너져 내린 '6·11 사태' 이후에도 공사 차량을 막는 등 계속해서 한전과 경찰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송전탑이 다 세워졌다고 해서 끝날 싸움도 아니었다. 밀양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질시하고 경멸하는 무너진 공동체 속에서 힘들게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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