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밀양, 이제는…] (2) 국가권력의 폭력과 책임

"저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다!" 이렇게 외친 경찰관들이 '시민 아닌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포위했으며, '왜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느냐'고 항의하면 강제적인 위력으로 제압했다. 경찰은 이미 사람들을 '시민이 아니다'라고 규정했기에 공권력 행사에 거침이 없었다.

공권력은 항상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정당한 공무 집행과 공권력 남용 사이에서 긴장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와 언론의 견제·감시는 필수적이다. 만약 경찰이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으면서도 "정당한 법집행을 하고 있다"고 강변한다면 이는 권위주의 정권의 도래를 알리는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반대해온 주민들은 '시민이 아니었고', "시민이 아닌 상황을 감내하면서 공권력 남용을 견뎌내야 했다." 4대악 척결을 외치며 국민의 동반자라는 이미지를 확산하는 데 노력해온 경찰은 유독 밀양에서만큼은 "공권력 남용의 '생얼'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반드시 공권력 남용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묻겠다는 각오다. 또한 국민 취급을 받지 못한 모멸감을 씻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 '밀양 싸움'이 끝나지 않은 이유다.

지난 11일 127번 송전탑 농성장 강제철거 현장에서 박훈 변호사가 경찰에 끌려나오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인권침해 감시와 부당한 연행을 막고자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표세호 기자

◇"공권력 남용의 결정판", 6월 11일 = 25일 국회에서는 '6월 11일 밀양 행정대집행 상황에 대한 긴급 증언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날 국회를 방문한 밀양 주민 한 명이 6월 11일 상황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격하게 울먹이기 시작했고 실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 의료진 진단 결과 이 주민은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4개의 천막 농성장이 철거된 6월 11일, 밀양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밀양에서 경찰이 철거한 것은 사람이었다. 국가폭력과 반인권으로 점철된 진압작전이었다.' 밀양인권침해 감시단은 6월 11일 밀양의 상황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권침해 감시단이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것은 50여 명의 주민과 연대자가 평화적으로 벌이는 시위 현장에 2000명이라는 경찰력이 투입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한 경찰은 주민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주민을 발로 차기도 했다. 경찰에게 소속, 지휘, 이름을 물어도 어떠한 대답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일부 여성 주민이 옷을 벗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남성경찰이 들이닥쳐 공포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주민들의 통행을 과도하게 제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지휘관은 "저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다가도 인권침해감시단과 변호사 등이 항의하면 통제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 증언대회에서 나온 주장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천주교 신부가 농성장으로 가려는 것을 경찰이 한 시간가량 막았다. 신부는 '밀양 주민과 수녀들이 연대하는 종교활동을 위해 가겠다'고 했으나 현장 지휘관은 '정상적인 종교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경찰이 헌법에 보장된 종교활동의 자유를 탄압하고 종교인의 양심을 재단하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으나 현장 지휘관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경찰은 변호사들의 접근을 막았고 취재 기자들을 강제로 끌어내기도 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찰 중에는 '국제신문', 'MBN' 등의 언론사 비표를 달고 정보 수집 활동을 펼치는 이들도 있었다.

또 현장을 지휘하던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은 면담을 요구하는 신부에게 "면담을 하고 안 하고는 내 마음이니까,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대응했다. 전쟁터 같은 참혹한 현장에서 경찰 간부들은 "빨리 해치워 버렸다"며 낄낄대는 등 비웃음과 폭언을 주민들에게 선사(?)했다.

인권침해 감시단이 제시하는 경찰이 던진 비웃음의 압권은 다음과 같다. "주민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응급 상황에서 '어르신이 숨이 가쁘다. 들것을 가져와 달라'고 요구하는 대책위 활동가에게 경찰은 '나도 숨이 가쁘다'며 조롱했다."

◇"끝까지 책임 묻겠다" = 765㎸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6월 11일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과 인권침해는 반드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밀양에서 벌인 모든 작전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경찰이 과도한 폭력을 자행했다"는 주장을 넘어서 "경찰이 뻔뻔한 주장을 할 수 있게 만든 작금의 국가 제도에 대해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국제인권법과 규약 등에 부합하지 않는 대한민국 경찰의 현장대응, 그리고 국민 기본권을 무시하는 언행 등은 밀양에서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국가 폭력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왜 우리가 국가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강제 진압 과정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내미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이 법에 규정된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밀양에서만큼은 예외였다는 게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또한 밀양주민, 인권침해 감시단 등은 '인간의 조건'을 무시한 공권력에 계속해서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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