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4) 거제 향교·관아와 신선대·바람의 언덕

진해지역아동센터·다문화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 진행한 5월 24일 역사탐방은 거제를 찾았다. 거제는 제주도나 남해섬 또는 울릉도와 달리 통째로 관광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대규모로 들어선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산업체와 지심도(동백섬)~공곶이~학동~해금강~바람의 언덕·신선대로 이어지는 명소들이 두 가지 색깔로 섬 바깥 사람들에게 비치기도 한다.

아침 떠나는 버스에서 거제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친구가 있느냐 물었더니 서넛이 손을 든다. 또 거제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 물었더니 딱 한 친구가 바람의 언덕요, 그런다. 나머지는 꿀 먹은 벙어리다. 특별한 연고 없이 그냥 다녀오다 보니 기억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 같다. 오전에는 거제면에 있는 거제향교와 기성관·질청, 거제초등학교를 돌아보는 역사 탐방을 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에는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를 돌아보며 즐기기로 했다. 거제의 역사와 자연을 한꺼번에 누리는 셈이다.

신선대를 찾은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

◎옛 관청 시설 몰려 있는 거제면

거제시에서 거제면은 좀 별난 동네다. 거제 사람들에게 거제읍은 한때 가장 컸던 중심지로 기억돼 있다. 그만큼 융성했었는데 고현읍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거제면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 좋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하니 함께 간 어른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살게 됐다면 집이 들어서고 길이 나면서 향교나 기성관과 질청이 지금과 같은 느낌으로는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 다섯 명과 아동센터 선생님 네 명이 아이들을 한 모둠씩 맡았다. 아홉 모둠에게는 향교에서부터 '미션'이 주어졌다. 아이들을 모아 건물 앞에 서서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아이들이 집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으로 알아야 할 미션이 적힌 종이가 주어지자 저마다 모둠별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제향교는 사천향교와 함께 경남에서 가장 크다. 거제가 옛적부터 얼마나 큰 지역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미션은 향교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제사를 모시는 대성전 뒤에 왜 일부러 나무를 심었는지, 명륜당과 동재·서재는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등을 알아보라고 이른다. 향교 텃밭에 심어진 작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미션도 있었는데 딱 한 모둠이 맞혔다. 그게 콩이었는데 정답을 말하자 모두가 '우와 그게 콩이었어~?' 놀라는 반응들이다. 늘 먹는 콩나물이나 두부의 원료인 콩이 어떤 모양으로 자라는지 처음 본 것이다.

장터를 지나 거제기성관으로 옮겨간다. 때 마침 장날이라 시끌벅적하다. 동헌은 면사무소가 들어서면서 사라졌지만 객사는 남았다. 이름이 기성관(岐城館)인 객사는 촉석루·영남루·세병관과 더불어 경남에서 네 번째 큰 건물로 꼽힌다.

기성관 앞뜰 비석 무리를 살펴보는 모습.

이런 규모에다 가운데 지붕을 양옆지붕보다 높다랗게 만들어 기품과 화려함을 더했다. 뜨락에 있는 석비와 철비 가운데 세워질 당시 더 비싸고 공이 든 것은 어느 쪽일까 문제를 냈더니 다들 석비라 답을 적었다. 쇠보다는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돌에다 한 표를 던진 셈이다. 사실 만들 당시는 돌보다 쇠를 더 쳤다. 돌은 흔하지만 쇠는 귀했고, 돌은 쌌지만 쇠는 비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 푼이라도 비싸야 정성 또한 더 표현된다고 믿는 사람 마음 탓이 아닐까 싶다.

미션 수행을 위해 기성관 앞 안내문을 읽고 있는 아이들.

◎건물도 교가도 대단한 거제초교

기성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거제초교는 거제 교육의 발상지답게 1907년 세워졌다. 한국전쟁으로 망가진 뒤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다시 건물을 세울 만큼 지역민들은 교육열이 대단했다. 건물 모양새 또한 그에 담긴 뜻과 더불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표면을 화강석으로 마감해 역사가 오랜 대학처럼 보인다.

들머리에 빗돌에 새겨진 교가 또한 그 짜임새가 대단해서 지역성과 전국성을 아울러 갖춘 위에 역사성까지 더했다. "보이니 계룡산아 우리 백두산/ 보이니 죽림만과 우리 제주도/ 남북으로 펼쳐 있는 우리 삼천리…// 들었니 계룡산아 성웅의 외침/ 놀았니 죽림만아 거북선하고/ 거룩한 충무공의 뜻을 받아서…".

첫손 꼽히는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 선생의 작사 솜씨가 있는 그대로 나타나 있다. 눈길을 빼앗긴 어른들은 사진으로 담기에 정신이 없다. 작곡은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로 시작되는 '그네' 노래로 유명한 금수현(1919~1992) 선생이 했다는데, 노래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방·호방 같은 원님 아래 관리 집무실인 질청이 그대로 남은 것도 특이하다. 사무를 봤던 가운데는 대청마루지만 기거를 했던 양쪽에는 아궁이가 딸린 방을 여럿 넣었다. 여기 마루에 앉아 '거제 역사 도전! 골든벨'을 하면서 한나절 돌아봤던 데를 더듬었다. 모두 열 문제 가운데 여덟 문제를 맞힌 모둠이 우승해 장학금을 받았다. 1인당 1000원, 금액이 적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머쓱했지만 그런 재미도 좋았다.

◎자연에서 온몸으로 자유로움도 느끼고

학동해수욕장 가까운 경북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다들 몽돌이 구르는 바다로 향했다. 학동해수욕장에 간다면 '착~촤르르~~' 파도가 드날 때마다 몽돌끼리 부딪치며 구르는 소리는 누구나 꼭 한 번은 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소라가 들려주는 노래 같다"고 했는데 그 정도 상상력이 없어도 마음까지 씻어주는 흥그러움은 누구나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학동해수욕장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이어서 찾은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이번에 아이들은 바람의 언덕에서 가장 크게 감흥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바람의 언덕에서 껴안은 그 무한한 바람과 그로써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었다. "나는 주말이면 늘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했다. 생각 안에서만 가두어져 살고 있다. 오늘도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바람의 언덕에서 나는 너무 좋았다.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이런 기분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다시 오고 싶다." 이번 탐방에 함께 나선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썼다.

바람의 언덕에서.

어쩌면 역사를 배우고 뭐 그런 일보다 아이들이 이런 경험 한 번이 더 소중하고 귀한 줄을 어른들이 더 모르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찾아가면 바람으로 안아주는 한결같은 언덕이 거기 있듯이, 어른도 아이도 살아가면서 변함없이 지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하는 탐방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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