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경찰들의 인권의식 표출 유형…밀양 행정대집행 기념촬영 반성을

강의 요청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필자가 남다른 학식이나 경험을 갖추고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경찰이라는 거대한 조직 내에서 '인권'을 업무로 맡아보는 몇 안 되는 실무자다 보니 팔자에도 없는 강사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막상 교육시간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필자의 능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교육에 임하는 경찰관들 표정이 민망하리만큼 경직된 탓도 있다. 무능한 강사와 경직된 표정의 경찰관들이 만들어내는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인권'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전달하려 애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경찰관들은 '인권'을 '어려운 것' 혹은 단순히 '참아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경찰공무원을 선발하는 채용시험의 높은 경쟁률을 떠올리면 지적 능력의 문제는 아닌 게 확실하다. 그렇다고 '인권'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조직 내에서 '인권'은 수도 없이 반복,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관들의 반응이 뜨악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경찰관들은 대부분 지시를 통해 '인권'을 접한다. '피의자의 인권보호에 유의하라', '인권침해 오해 없도록 하라'는 식의 지시가 그것이다. 타고나길 아주 낙천적으로 타고나 상사의 잔소리를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격이 아니고서야 반복되는 잔소리나 지시가 마냥 좋을 리 없다. 거기에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외부의 '권고'가 곁들여지고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보도가 더해지면 '인권'은 예의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목에 매달고 있는 답답한 넥타이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간의 인권 교육이라는 것도 대부분 자신이 아닌 다른 경찰관의 잘못된 행태나 실수담을 들려주는 식이었다. "이런 잘못을 하지 말 것" 또는 "잘못을 하게 되면 징계도 먹고 망신도 당한다"는 권선징악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타산지석도 교육적 측면에서 그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타인의 잘못을 예시로 '잘못하면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과 '더 큰 잘못을 하면 직을 잃고 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주입하면서 '인권 감수성'을 갖추길 바랄 수 있을까. 미우나 고우나 경찰관들은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존재다. 평범한 국민들은 경찰관의 모습을 통해 국가를 평가한다지 않는가. 일상에서 가까이 접하는 경찰관이 불법과 무질서에 엄중하면서도 때론 약자를 보듬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이웃과 같은 존재여야 하는 이유다.

최근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이 끝난 직후 여경 기동대원들이 브이자를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어 논란이 됐다. 여론의 비난이 거셌지만 기동대의 고충을 잘 알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무척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제복을 입었을 뿐이지 그녀들 역시 카메라만 들이대면 습관적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젊은 여성들 아닌가. 그러나 백번을 이해하려 해도 기념촬영이 적절하지 못한 처사였다는 것마저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밀양 송전탑 문제와 같이 찬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일수록 처신에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임무 수행의 대상이었다지만 그래도 상대는 힘없는 할머니들 아닌가. 굳이 그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을까.

필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 흘리며 고통을 나누던 경찰관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팽목항의 경찰과 밀양의 경찰이 서로 다른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은 칼날 같은 제복 안에 늘 따뜻한 심장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념'이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 가슴에 새기는 것이고 우리 경찰관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경찰상이 있다면, 그것은 '밀양'이 아니라 '팽목항'에서 보여준 모습 아닐까. 타인의 아픔을 온몸으로 나누려했던 그 순수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타인의 고통에 옷깃을 여밀 줄 알고 슬픔에 싸인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경찰관은 몇 번의 지시나 한나절 교육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민주적인 가치가 일상에 스며들고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문화가 조직 내에 정착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7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경찰이 그 정도의 역량은 갖출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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