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나체를 바라보는 것보다 비칠듯 말듯한 얇은 베일을 걸쳐 은근한 자극을 주는 세미누드를 바라볼 때 관음증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

서양미술에서 누드 작품 중 누드모델 자체 하나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인물들도 함께 참여시켜 누드와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내용이 에로틱할 뿐 아니라 감상자를 관음자로 만드는 역할도 충분히 한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비스듬히 누운 여성 누드를 주제로 삼고 있는 티치아노는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에서 벌거벗음을 부끄러워 하지않는 나체의 미녀가 그녀를 관음적으로 바라보는 감상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작품 배경에는 옷을 입은 두 여인이 그냥 집안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르간 연주자와 함께 있는 비너스>(1548)에서는 감상자에게 관음증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너스는 비스듬히 누워서 큐피드와 이야기를 하려고 머리를 돌리고 있고, 오르간 연주자는 오르간과 함께 비너스의 침대 발치에 앉아 있으며 머리를 돌려 그녀의 다리가 갈라지는 부분을 응시하고 있다. 오르간 연주자가 그녀에게 본능적인 관심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수많은 에로틱한 작품을 그린 영국 미술가 스펜서의 거의 모든 작품은 자신의 얘기를 담은 것이다. <두 명의 누드자화상-스탠리와 패트리시아 스펜서>(1937)는 작가 자신이 그 앞에 비스듬히 누운 두번째 부인의 나체를 강렬하게 집중해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물론 작가도 성기를 드러낸 나체다.

미술가들은 이런 관음증을 표현하는 소재들을 어디서 찾았을까.

르네상스 시대와 그 후대 미술가들은 삽화를 그릴때 주로 구약성서의 ‘바윗과 바세바’, ‘수산나와 장로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아름다운 누드를 그릴 기회를 가짐과 동시에 작품 속의 여인이 관찰당한다는 사실에 작가 자신이 더 흥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스 신화도 미술가에게 관음증적 충동을 자극하는 주제를 다양하게 제공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틱한 작품은 누드가 등장하지만 ‘죄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다. 티치아노가 그린 <다이아나와 악타이온>(1556~1559)을 보면 여신은 베일을 들고 화가 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며 요정들은 두려움에 차서 뒤로 물러서 있다. 악타이온은 자신의 무례 때문에 공포에 질려있다. 사냥꾼 악타이온이 다이아나 여신이 목욕하는 장면을 우연히 본 후 저주로 인해 사슴으로 모습이 바뀌어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려죽었다는 신화의 내용을 이해해야만 해석이 가능한 그림이다.

판화작품의 내용을 각색한 피카소의 에로틱 아트도 있다. <볼라르 수트>에 실린 매우 아름다운 판화 가운데 하나인 <잠자는 여인을 보는 미노타우로스>(1933)를 피카소는 아주 단순화시켜 솔직한 관음증을 표현했다. 또 <여자와 남자>(1969)라는 작품은 아예 잠자는 여성의 나체를 몰래 감상하고 있는 남자의 희열에 찬 모습을 담고 있어 관음증을 여실히 드러낸다.

직접적으로 연인의 성애를 작품에 담는 경우도 있다. 앞서 스펜서는 자신의 성경험과 누드를 토대로 작품화했고, 아펠레스라는 미술가는 알렉산더왕과 그의 정부 캄파스페의 다정한 모습을 그리면서 관음증을 스스로 정당화시키고 감상자도 관음자로 만든다.

1800년대로 넘어가면 앵그르가 <터키탕>(1862)을 통해 관음증을 암시한다. 누드로 전체화면을 채우고 있는 이 작품은 남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장면을 본다는 자체가 에로틱하며 동성애적 자세 누드여성들의 다양한 포즈 등이 동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어 생동감이 있다는 것 또한 관능적이다.

발투스는 바닥에 누운 어린 소녀의 눈초리를 담은 <구성 습작>(1963~1966)이란 작품에서 성적 경험에 아직 준비가 안된 미성숙한 신체를 보여줌으로써 관음증을 드러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에로틱한 미술을 즐기는 것은 ‘일탈’로 간주된다. 에로틱한 내용을 지닌 미술을 보고 아주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는다면 우리는 모두 관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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