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색의 싸움이었다. 6·4 지방선거는 적, 청, 황의 '콤퍼지션'(구도)이었다. 빨강을 선택한 것은 새누리당이고 파랑은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의 무사귀환을 비는 노랑이 뒤섞여 그 명시성과 주목성만큼 용호상박했다.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은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1930년 작품이기도 하다.

몬드리안은 그림에서 조형의 기본만 남겨두고 다 생략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기하학적인 모양과 빨강, 파랑, 노랑의 색만 남게 된다. 이것이 몬드리안의 추상화다.

몬드리안은 회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직선과 직각, 수직선과 수평선을 사용했고, 3가지의 기본적인 무채색과, 3원색인 노랑·빨강·파랑을 표현의 원칙으로 삼았다.

색과 색의 싸움은 추상적이었다. 지방선거인데도 빨강색당의 전신에서 대표를 지낸 사람들이 경남도지사와 창원시장에 출마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사람 모두 당선되었다. 두 사람 모두 기본만 남겨두고 다 생략했다. 고향을 위해서 봉사하시겠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제 우리는 수도권에서 할 일 다 하신 분들의 봉사 활동을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당공천제를 없앤다고 공약했지만 토호 발호를 막고, 정당공천을 통해서 검증받는 것이 안전하다는 핑계로 다 생략했다.

색들의 전쟁에서는 빨강, 파랑, 노랑이 주색이 되었다.

출발지는 노랑색이었다. 재난에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에 경고를 주고 시작한 셈이었다. 그러나 노란 물결은 경남을 넘지 못했다.

선정적이고 호전적인 빨강색은 극단적인 유연성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파랑색 옆에 서면 파랑빛을 띠는데, 그래서인지 지난 대선에서 빨강색당의 대통령 후보는 파랑색당의 자산인 변화와 개혁을 내세워서 빨파랑의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선거는 선거일 뿐 변화와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 빨강색당이 선택한 것은 읍소였다. 다분히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빨강색당은 연민이 느껴질 만큼 납작 엎드렸다. 빨강에 검정을 섞어서 세련되기도 하고, 흰색을 섞어서 순화시키기도 했다. 자유롭게 사용된 빨강색은 억제되지 않은 거침을 보여주었지만 경남의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민을 보냈다.

   

일상적인 의미의 파랑은 빨강에 대응하며, 빨강·노랑과 함께 감산혼합의 3원색을 이룬다. 이 자제의 색은, 쿨하고 지성적이고, 멋진 감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랑색은 창조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지루하고 단조로워 보였을까? 파랑색은 도민과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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