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찰 2000여 명이 동원되고 밀양시청 공무원과 한전 직원까지 수백 명을 더 동원한다니 아예 씨를 말릴 태세였다. 우리 또한 부족한 힘이나마 최대한 힘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일이지만 월차를 써서 지난 11일 오전 일찍 밀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날부터 경찰들이 농성장 주변을 봉쇄했다고 한다. 그나마 단장면 태룡리 101번 농성장은 주민과 함께 샛길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김밥 100줄을 4명과 나눠서 지고 산을 탔다. 도착하니 주민과 전국에서 모인 연대자들이 반갑게 맞아줬다.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래고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결의를 모았다.

수년 전 용산참사로 가족을 잃어야 했던 용산분들, 수년간 해고투쟁을 벌이는 평택 쌍용차 노동자들, 한가족같이 연대해왔다는 어린이책 시민연대 분들, 그리고 젊은 학생들. 그렇게 지역과 직업, 세대를 넘어 밀양을 지키고자 많은 분이 밤새 모여들었다.

그러나 129번, 127번, 115번이 차례로 철거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발언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면서도, 구호를 외치면서도 안타까움과 서러움, 분노와 아픔이 겹쳐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누가 이 순박하고, 착하고, 인정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하는가? 도대체 왜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을 짓밟으려는가? 그럴수록 지켜내야만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평화로운 그곳을.

경찰이 101번으로 집결한다는 소식에 모두가 자기 몸에 밧줄을 묶어 농성장에 고정했다. '야이 ××들아~ 다 죽이고 공사해라' 선창에 맞춰 구호 연습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긴장을 풀었다. 오후 4시께 마침내 경찰이 들이닥쳤다. 인권위 관계자와 국회의원, 보좌관들도 있었지만 경찰과 공무원, 한전 직원들은 순식간에 농성장을 에워쌌다. 그리고는 떼거리로 달려들어 밧줄을 끊고 사지를 들어 사람들을 대오 밖으로 끄집어냈다. 평화롭던 그곳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농성장이 철거됐다. 세월호 참사 때는 그토록 많은 이를 수장시킨 공권력이 송전탑 농성장은 어찌나 신속하게 철거하던지…. 여기저기에서 부상자가 생겨 헬기로 옮겨지고, 억울함과 분노 섞인 고함과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몇몇 경찰은 비웃거나 조롱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전 직원들은 주민 보란 듯이 곧바로 농성장 주변 나무들을 잘라내고, 헬기로 컨테이너와 굴착기 등 장비를 실어날랐다. 모든 게 끝났으니 체념하라며 쐐기를 박으려는 듯했다. 너무 지독하고, 무자비하고 악랄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경찰과 대치하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짐을 싸들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그 먼 길을 내려왔다. 그동안 수없이 오르내리며 마음을 다졌을 이 길을 내려온 주민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다행히 밑으로 내려오자 연대자들이 불을 밝히며 마중을 나와 서로 "수고했다"며 따뜻한 안부의 말을 건넸다. 그렇게 서로 쓰다듬으며 다시 하나가 됐다.

산 아래 동네에 모여 마무리 집회를 했다. 비록 농성장은 철거됐지만, 송전탑 반대 투쟁은 이제부터 2라운드에 들어가리라. 매일같이 공사를 위해 한전 직원과 경찰이 마을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이를 막으려는 싸움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주민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연대자들이 함께 어루만지며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으면 한다.

비록 송전탑이 세워지더라도, 그 송전탑을 다시 뽑아낼 때까지, 그리고 더는 핵발전소가 건설되지 않는 그날까지 밀양 할매·할배들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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