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흥미로운 칼럼(6월 12일 자)을 썼다. 요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울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야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두 사람이 복지·연대·평등 등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서울을 만든다면 "세상의 시선"을 붙잡아 결국 "시민들이 나라도 맡길 것"이라고 한다. "야당과 진보 세력의 자원을 서울에 집중"해 "서울을 집권 비전으로 제시"하자는 구체적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연거푸 정권을 빼앗겼고 숱한 호조건 속에서도 좀체 새누리당 세력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야권의 지지자들로선 혹할 만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복지·연대·평등. 칼럼이 언급한 핵심 가치도 흠잡을 데가 없다. 소외된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풍요롭고 평등한 서울. 모든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인간다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서울. 그토록 꿈꿔왔던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드디어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한데 한편에서는 좀 이상한(?) 이야기가 들린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들의 교통 '복지' 향상을 위해 무려 8조 원 규모의 경전철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이제 이 '전기 먹는 하마'를 굴리려면 다른 지역 어디선가는 또 핵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줄줄이 이어야만 할 것이다. 박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 때 한 시민단체가 보낸 원전 관련 질의에 대부분 무응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노후 원전 폐쇄, 추가 건설 중단, 삼척·영덕 신규부지 지정 철회 등 타 지역민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에 모조리 침묵했다.

밀양 송전탑 농성장 강제 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녹색당 당원들의 1인 시위 한 장면. /녹색당

조희연 교육감 당선인은 일반고만 나와도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일류대학에 갈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다른 지역 학생·학부모들은 한층 더 험난한 입시 경쟁을 하게 생겼다. 아이의 교육 여건을 위해서라면 빚더미도, 기러기 신세도 마다치 않는 부모들은 더더욱 서울 입성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소위 일류대학도 서울에 몰려 있고, 좋은 직장도 마찬가지이니 어려서나 나이 들어서나 온 국민의 일생일대 목표는 오직 서울, 서울일 수밖에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의 칼럼은 그 좋은 취지와 충정에도 지방의 식민지성에 대한 고뇌가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 박원순·조희연 두 사람에게 진정 진보의 미래를, 나아가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자 한다면 서울 중심적 사고부터 벗어나라고 했어야 옳았다. 그들에게 강제해야 하는 것은 다른 지역과 연대·공생의 확대이지 서울공화국 질서의 온존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십, 아니 수백 년 동안 온갖 물적·인적·제도적 수혜를 누려온 서울이다. 서울의 발전과 풍요는 곧 지방의 황폐로 이어졌고 이제는 전기까지 갖다 바치느라 산하는 물론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지경이다. 다른 서울을, 다른 나라를 꿈꾼다면 두 사람은 말해야 한다. 서울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밀양의 어르신들이 참혹한 꼴을 당하지 않을 수 있고 모두가 원전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일류대학을 향한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시대는 끝내야 하며, 어느 지역에서 어떤 공부를 해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전 국가적인 교육 환경,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실종된 "우리끼리 잘해보자"식 '서울모델'은 어떤 포장을 하더라도 지역민들에게 또 다른 박탈감만 안겨줄 것이다. 보다 폭넓은 연대와 평등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진짜 새로운 서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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