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 철거 후 기념촬영한 여경 풍자 퍼포먼스…한전 사장에 이웃돕기 성금도

농성장은 뜯겼지만 "송전탑을 뽑을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한 밀양 주민 들이 16일 새벽 버스 2대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주민 80여 명은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 모였다. 이날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소속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수녀 등 종교인들도 함께했다.

주민들은 구호와 성명서를 읽는 통상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라 765㎸ 송전탑 공사 강행과정과 지난 11일 농성장 강제철거 때 당한 '모욕과 조롱'을 경찰과 한전에 돌려주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 악을 쓰는 언어가 아니라 저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이 지금 밀양 주민들의 언어적 선택"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경찰청사 철거 '국민대집행'을 시도했다. 대집행 영장은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 산새·밤톨·벼·떡갈나무·미나리·아삭고추·깻잎, 산외면 사과나무와 상동면 단감나무 등 밀양에 사는 자연과 특산물, 화악산 산신령과 도곡저수지 산신 등이 이성한 경찰청장에게 보낸 것이다.

6일 서울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모형을 호미로 파내 쓰러뜨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영장에서 "그동안 수없이 누적된 국가 폭력 전과 경력과 시정요구에 불복종한 상습 파렴치범으로 규정해 국민의 이름으로 폭력집단 소굴인 경찰청을 철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철거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765㎸ 초고압 송전선로와 수명연장 가동 중인 부산 기장군 핵발전소 고리1호기를 경찰청사 인근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주민들이 당했던 것처럼 경찰청에 "방호가 쉽고 인력·비용 절감을 기할 수 있는 등 수많은 장점이 있는 경찰청사로 옮기면 원전과 송전탑 반대시위를 예방하고 국민안전을 위해 모든 위험을 몸으로 감당하고, 국가 전력정책에 대승적으로 협조하는 차원에서 감내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경찰청 앞에서 손으로 브이(V) 자를 만들어 보이며 '경찰청 진압기념 촬영'도 했다. 연대자들은 '노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니 좋냐?'고 적힌 안전모를 썼다. 이 퍼포먼스는 지난 11일 여경들이 농성장 철거를 마치고 한 단체촬영을 풍자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전은 신고리 3·4호기 생산전력 전송과 전력수급 이유를 들어 주민들 저항에도 지난해 10월부터 공사를 강행해왔다. 또한 지난 11일 밀양시는 경찰 2000명을 앞세워 행정대집행 영장을 제시하며 부북면 위양리 129·127, 상동면 도곡리 115번,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철탑 예정지 농성장을 차례대로 강제철거했다. 경찰은 알몸인 채 쇠사슬을 목에 감은 주민들, 수녀와 연대자들을 끌어냈고, 이 과정에 주민 등 18명이 다치거나 쓰러져 병원에 옮겨지기도 했다. 주민들은 경찰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밀양 주민 등이 지난 11일 농성장 철거 후 기념촬영을 했던 경찰을 비판하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청 앞에서 한바탕 '판'을 벌인 밀양 주민들은 오후 2시 서울 강남 한전 본사 앞으로 옮겨 765㎸ 송전탑 모형을 호미로 캐서 뽑아 부숴버리는 상징의식을 했다.

주민들과 밀양의 자연들은 "국가전력 산업의 허울을 쓰고, 대기업과 핵마피아들의 뒷설거지를 하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냐"며 조환익 한전 사장 앞으로 주민들이 모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던졌다.

이 같은 퍼포먼스는 '보상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돈으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한 한전의 행태를 풍자로 고발한 것이다.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통해 대기업들의 값싼 전기 공급을 위해 발생한 적자분을 상쇄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주민들이 그동안 드시고 싶은 막걸리, 담배 한 개비 아낀 눈물겨운 돈으로 조성한 불우이웃 성금을 전달하니 받아달라"고 했다.

특히 이날 천주교 수녀·수사들도 강제철거 과정에서 경찰에 사지가 들려 끌려나오고 두건이 벗겨지는 등 수모를 당한 데 대해 '종교탄압'이라며, 경찰청장과 작전을 지휘한 밀양경찰서장 파면을 촉구했다.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눈물로 호소하며 대화를 요청했던 주민들의 피맺힌 절규를 외면한 채 오히려 정부는 조롱과 멸시 가득 찬 폭력으로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며 밀양 주민들과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기본적인 상식과 법, 예의를 지키기는커녕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잔악 무도한 물리적인 폭력 행사로 팔골절뿐만 아니라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폭거를 수녀들에게 자행했다"며 "경찰이 보여준 행태는 직무를 포기한 것이고 한전의 경비용역을 자처하며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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