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쯤인가 보다. 평거동에 '횟전문점'이라는 횟집이 있었다. 딴 데서 삼겹살 안주에 소주를 마신 우리는 2차로 이곳에 갔다. 아내 포함 서너 명이었다. 수족관에서 노닐고 있는 복어에 눈길이 갔다. 우리는 복어매운탕을 시켰다. 아내는 집으로 가고 나는 다른 볼일이 있어 시내로 갔다. 거기선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맥주잔을 잡은 손에도, 마시는 입술에도 감각이 없었다. 이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택시에서 내려 바닥의 흙을 손으로 긁어보았으나 감각이 없었다.

새벽 2시쯤이었을까. 나는 극심한 두통과 복통, 어지럼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바닥이 요동을 쳤다. 구토가 밀려 올라왔다. 구르고 기어서 겨우 화장실에 갔다. 변기를 꽉 붙들었지만 온 세상이 난파선같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가 화장실 가기를 되풀이하다가 119를 생각해 냈다. 곁에서 걱정하던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2분도 되지 않아 119 아저씨들이 왔다. 그들은 나를 달랑 들고 차에 태워 '복음병원'으로 갔다. 아내도 같이 같다. 그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병원에서도 토했다. 지켜보던 아내도 토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아침이 되었지만 구토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약을 더 먹고 나서야 겨우 조금 진정이 되었다. 일단 살았다. 술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출근한 의사가 뭘 먹었느냐 물었다. 나는 삼겹살과 소주, 복어매운탕과 소주, 맥주라고 말했다. 평소 그런 적이 있느냐 물어 없다고 했더니 복어가 문제라고 했다. 복어독을 먹은 것이라고 했다. 복어는 웬만해서는 그 자리에서 잡아 바로 끓여먹는 게 아니란다. 그래도 자격증 있는 주방장이 해준 건데, 설마 했다. 이틀 뒤 퇴원했다. 입원비가 15만 원 정도 나왔다.

나는 문제의 그 '횟전문점'으로 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잘못을 시인했다. 복어는 처음 장만하면 막걸리로 씻어내고 물에 담가 하루 정도는 독을 빼야 하는데 손님이 달라고 하기에 급한 마음에 매운탕을 끓여줬다는 것이다. 나는 뒤로 자빠질 뻔했다. 영수증을 내밀었더니 두말없이 15만 원을 내어주었다. 나는 그날 함께 술 마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여 그 돈으로 그 집에서 회를 시켜 먹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다음부터 밥맛 입맛이 돌아와 두세 숟갈 들다가 말던 아침밥을 한 그릇, 어떤 날은 두 그릇까지 먹게 되더라는 것이다. 신기했다. 알아보니, 복어독이 몸속의 기생충들을 박멸해버려 그렇단다. 복어독 먹고 죽으면 끝장이지만, 살아남기만 하면 그보다 좋은 약이 없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더 다행인 것은 그때 같이 매운탕을 몇 숟갈 먹은 아내는 괜찮았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 태어난 우리 아들도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날 함께 매운탕 먹은 다른 분들도 아침에 일어나다 어지러워 침대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이우기(이우기의 블로그·http://blog.daum.net/yiwo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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