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정태호·권수미 부부

'부부의 연'이라는 게 그런 법이다.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4개월 전 결혼한 후 부산에 신혼집을 마련한 정태호(32)·권수미(30) 부부 에게도 그러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가 있다.

2009년 11월이었다. 태호 씨는 옛 여자친구와 헤어져 이별의 아픔에 빠져있었다. 어느 날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떠나기에 앞서 태호 씨에게 한 여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수미 씨 번호였다. 태호 씨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다음날 바로 연락했고, 며칠 후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실 태호 씨 친구는 수미 씨에게 다른 남자를 소개해 줄 생각이었다. 그 대상을 5명으로 압축해 뒀는데, 그 속에 태호 씨는 포함돼 있지 않았었다. 그런 태호 씨가 수미 씨라는 존재를 알고서는 재빨리 연락한 것이다.

그렇게 첫 만남의 시간이 다가왔다. 흰티·청바지 차림의 수미 씨를 본 태호 씨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모습에서 이미 호감이 모락모락 피어난 것이다.

하지만 수미 씨는 좀 심드렁했다. 수미 씨는 이렇게 말한다. 옆에서 듣던 태호 씨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다.

"남편이 외형적으로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거든요. 더군다나 머리가 큰 편이에요. 좀 그랬죠…."

   

하지만 태호 씨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수미 씨가 만남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평일 퇴근 후 심야 드라이브를 다니며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남들 보기에는 사귀는 것처럼 보였을 법하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았다. 태호 씨는 중간중간 스킨십 기회를 노렸지만, 수미 씨는 일절 허용하지 않으며 여전히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한 달가량 지속되자, 태호 씨도 지쳐갔다. 태호 씨가 그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런데 그제야 수미 씨가 손을 꽉 잡아주었다. 수미 씨 마음을 변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주변 조언이었다. 수미 씨 말이다.

"한 달 정도 만나면서 이 남자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동요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저도 관두려 했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언니 친구한테 했는데, 그 언니가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안 만나려고 하느냐'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어요. 그 언니 말이 '쿵'하고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보다 이 남자가 훨씬 진심으로 대한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마음을 열게 됐죠."

첫 만남의 계기를 마련한 남자의 적극성, 그리고 남자가 포기하려던 찰나 여자가 내민 손길…. 이 두 가지가 지금을 있게 한 중요한 지점이었다.

둘은 4년 넘는 연애 끝에 지난 2월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상대방을 위한 프러포즈를 각자 한 차례씩 했다. 수미 씨는 연애 기간 소소한 이벤트를 자주 받았다. 이제는 본인이 해주고 싶었다. 둘만의 여행길에서 촛불도 켜고 시계를 선물하며 '나랑 결혼해 줄래'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을 태호 씨가 아니었다. 둘은 얼마 후 연극을 보러 갔다. 공연이 끝나자 사회자가 두 사람을 단상에 올렸다.

태호 씨는 준비한 편지를 읽으며 역시 '나랑 결혼해 줄래'라고 했다. 관객 200여 명의 박수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수미 씨는 지금와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이미 눈치채고 있었어요. 공연장 맨 앞자리에 자리 잡은 것부터 수상했거든요. 그래서 화장도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써서 하고 갔지요. 하하하. 프러포즈가 감동적이기는 했는데, 민망하고 좀 정신이 없었어요. 프러포즈를 앞둔 남성들에게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여자들은 그런 것보다는 조용한 이벤트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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