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창단 30돌 맞은 예술공동체 '큰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30주년을 맞은 문화예술단체 큰들 전민규 대표의 소회다. 전 대표는 "앞으로 30년 뒤에도 지금 모습처럼 함께하고 있길 바란다"고 했다.

예술공동체 큰들은 지난 1984년 진주시 상대동에서 '놀이판 큰들'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마당극' '풍물교육' '국제교류'로 대표되는 큰들은 그간 경남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공연을 했고 해외 무대도 두루 섭렵했다.

오는 28일 오후 3시와 7시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30주년 기념공연이 열린다.

공연에는 마당극 <이순신>과 130명 풍물놀이 무대가 펼쳐지며, 소리꾼 장사익이 우정 출연한다.

지난 12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큰들의 마당극 <허준>과 130명 풍물놀이 시연회를 보러 온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지난 12일 오후 5시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를 찾았다. 오후 7시부터 마당극 <허준>이, 오후 8시 30분부터는 130명 풍물놀이 시연회가 열리기에 큰들 단원들은 분주했다.

3단으로 철구조물을 쌓아 조명을 설치하고 음향을 조율하고 무대를 꾸미는 모든 일은 초록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30여 명의 상근 단원들 몫이었다.

대다수 문화예술단체가 상근 단원 3명조차 두기 힘든 상황임을 감안하면 큰들의 자립도는 놀랄 만하다. 40여 명의 진주·창원 큰들풍물단, 200여 명의 정기공연 참가 시민풍물단, 1500여 명의 후원회원이 큰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마당극 하면 큰들, 큰들 하면 마당극 = 큰들은 위인을 중심으로 한 마당극 <이순신>, <허준>, <논개>부터 한국사회 속 노인 문제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낭랑 할배전>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보유한 마당극 레퍼토리만 20여 개다. 고정적인 레퍼토리를 갖춘 예술단체일수록 자생력이 높다. 다양한 곳에서 원하는 주제에 따라 공연 요청을 해올 뿐만 아니라, 큰들 자신도 적재적소에 공연을 기획해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다.

전민규 큰들 대표는 "우리는 동인제 형식으로 운영된다. 자체적인 힘으로 1주일짜리 공연을 기획할 수 있다. 다른 단체 단원을 빌려오지 않고 우리 단원만 해도 연기, 연주, 의상 소품 준비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동인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동인들이 모여 이날 꾸민 마당극 <허준>은 웃음이 넘침과 동시에 함께 슬퍼하는 공감의 놀이였다.

진주 남강을 병풍 삼아 끝없이 펼쳐진 야외에는 '점 하나 찍어'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든지 마당극이 열린다. 마당극 시작 전부터 앞줄에 앉은 아이들은 '허준' '허준'을 외친다.

50분짜리 공연 내내 '타요'(어린이 애니메이션)만 좋아할 것 같은 어린이 관객들이 곧잘 추임새도 넣었다. 여느 실내 공연장처럼 '미취학 아동 입장 금지'라는 푯말이 필요 없었다. 깔깔깔 소리내 웃어도 그만이다.

"가난한 사람부터 치료해 주세요"라고 외쳐도 공연에 방해되지 않는다. 관객이 끼어들수록 무대를 꾸미는 단원들은 신나게 주고받는다.

마당극은 최근 벌어진 사회 문제를 풍자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주인공이 "미개한 백성들"이라며 관객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니니 "썩 꺼져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지난 12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큰들의 130명 풍물놀이 시연회. /박정연 기자

◇시민은 문화예술 수요자이자 공급자 = 큰들 하면 또 풍물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풍물놀이 자체만으로 흥을 돋우며 관객을 흡수하는 공연으로 정평이 나있다. 마당극의 여는 마당도 늘 풍물로 시작한다.

풍물은 놀이. 누구나 놀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올해 큰들 30주년 기념공연 무대도 어김없이 시민과 함께하는 '130명 풍물놀이'가 펼쳐진다. 지난 1998년 30명 규모로 큰들 정기공연 무대에 오른 시민풍물단은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졌다.

130이라는 숫자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를 꽉 채우는 최대 인원이 130명이기 때문이다. 매년 참가자를 별도로 모집한다.

올해로 11년째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하는 박희란(41·주부·진주시 상대동) 씨는 "산청에 놀러갔다가 <최참판댁 경사났네> 마당극을 보고 처음 큰들을 알았다. 극이 끝나고, 시민풍물단을 모집하니 관심 있는 사람은 신청서를 받아가라 하길래 얼른 챙겼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는데 매년 3월이면 일찌감치 신청한다"고 했다.

지난 3월 27일을 시작으로 사물놀이팀, 모둠북팀이 각자 2개월간 연습을 마쳤다. 5월 27일 130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습한 이래 이날은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강변 야외무대에서 시연회가 열렸다. 올해 풍물놀이는 7살 어린이부터 74세 할머니까지 함께 꾸민다.

시민풍물단 최고령자 임봉재(74·농민·산청군 단성면) 씨는 "원래 풍물을 좋아했다. 지난 2006년에 처음 참여하고, 8년 만에 다시 신청했는데 힘은 좀 부치지만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했다.

검정고무신을 신은 그녀는 몸은 작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임 씨는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무기력증에 빠져 지냈다. 풍물로 혼령들을 추모하고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해 문의 끝에 조금 뒤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마당극과 풍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다 = 큰들은 지난 2007년 일본의 공연단체인 '로온'(勞音)과 '하나코마' 회원 40여 명을 초청해 사물놀이 교육을 진행하면서 교류 공연을 시작했다. 로온은 '근로자 음악감상 협의회'라는 뜻의 단체로 지난 1950년대에 설립됐으며, 도쿄·홋카이도 등 주요 도시에 50여 개 지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듬해인 2008년 도쿄를 비롯한 일본 10개 지역 순회 공연을 펼치며 한국과 일본이 어우러져 풍물놀이 공연을 했다. 큰들 단원들은 이 공연에서 레퍼토리 마당극 <순풍에 돛 달고>로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전했다.

지난 2011년에는 라오스 최대 축제인 '삐마이 축제'에 참가해 풍물판굿, 대동놀이 등 전통문화 알리기에 나선 바 있다.

전민규 큰들 대표. /박정연 기자

전민규 큰들 대표는 "전통 마당극을 제대로 선보일 수 있는 단체가 몇 개 없다. 국제 무대에 나가면 더 큰 호응을 얻기도 한다. 주요 대사 70% 이상을 일본어로 공연해 전달력을 높이고, 최상의 무대로 노는 게 큰들이 가진 실력이다. 국제 교류 사업을 위해 스토리텔링 작업을 거쳐 작품 구상 중이다. 올해 안으로 작품이 나올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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