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시간대별 현장 상황

밀양시가 예고한 대로 오전 6시가 되자 곧바로 행정대집행이 시작됐다. 127·129번 현장으로 가는 장동마을 농성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5곳 모두 강제철거됐다. 대치·소강 국면은 없었다. 경찰·공무원들은 작정한 듯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주민을 끌어내고 농성장 흔적을 없애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언제 농성장이었나 싶을 정도로 휑한 그곳에서 주민들은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25분 만에 첫 움막 사라져…굴착기가 와서 완전히 부쉈다

◇오전 6시 10분 '장동마을 농성장' = 오전 6시가 가까워지자 장동마을 농성장에 배치된 경찰 움직임이 바빠졌다. 농성장으로 가는 임도 입구에 있던 경찰관은 취재진을 향해 "조금 더 지나면 못 들어간다"며 발걸음을 서두르게 했다.

오전 6시 10분. 노란 복장과 하얀 헬멧을 쓴 시 공무원들이 농성장 앞에 나타나 행정대집행 내용을 알렸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관들이 농성장을 에워쌌다. 주민 10여 명은 곧바로 움막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봉쇄했다. 간간이 문틈으로 분뇨·기름을 뿌리기도 했다.

그 사이 열린 길을 통해 경찰 버스 15대가량이 127·129번으로 향했다. 버스가 모두 지나가자 움막을 에워싼 경찰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주민이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했다. 한 주민이 돌멩이를 던지자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주민을 모두 끌어내 한쪽으로 몰았다.

시 공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농성장 철거에 나섰다.

현장 지휘관은 "고착 후 대집행 중이다"는 무전을 날렸다. 철거 시도 25분 만에 움막 형태는 완전히 사라졌다. 움막에서 나온 물품은 곧 트럭에 실렸다. 굴착기가 와서 터까지 완전히 부쉈다. 경찰에 둘러싸인 주민들은 차마 그 장면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반대로 뒀다. 한쪽에서는 경찰들이 노트북을 펴놓고 채증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권침해감시단 애원했지만 행정대집행 증명서 앞세워

◇오전 6시 20분 '129번 농성장' = 동이 트는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농성장 아래서 "경찰이다"는 외침이 들렸다. 6시 20분, 경찰을 앞세운 밀양시청 공무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남우 부북면 대책위원장과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침해감시단이 "내려가 달라. 할매들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밀양시 박철석 건설과장은 행정대집행 증명서를 보여주고 농성장으로 올랐다.

경찰은 농성장을 포위했다. 김수환 밀양서장이 진두지휘를 했고, 경찰은 칼, 절단기, 가위로 움막 덮개부터 뜯어내기 시작했다.

구덩이 덮개가 걷히자 쇠사슬을 목에 감은 할매들 알몸이 드러났다. 할매들은 경찰이 알몸을 가리려는 담요를 걷어차며 "죽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할매들은 한 명씩 들려 나갔다. 여기저기서 "그냥 빼. 들어올려"라는 경찰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민은 "개 끌듯이 끌고 나온 너희들이 사람이냐"고 했다.

경찰은 팔짱을 끼고 누운 수녀들도 끌어냈다. 사지가 들려 나오는 과정에서 두건이 벗겨지기도 했다. 끌려 나온 수녀들은 "이게 어떻게 대한민국이야"라며 울부짖었다. 철거 한 시간 만에 50여 명은 격리됐고 농성장은 뜯겨나갔다.

"당신들은 이곳을 짓밟겠지만 우리는 기억에 담을 것이다"

◇오전 8시 40분 '127번 농성장' = 이날 오전 4시 밀양 부북면 위양리 127번 송전탑 공사 현장에 모인 70여 명의 주민, 연대 단체 회원과 개인들은 현장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마쳤다. 흰 쌀밥에 나물, 무김치 등 단출한 식단이었지만 서로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등 이때까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전 8시 40분 천막 아래 밀양시청 공무원과 한전 직원, 경찰이 시야에 나타나자 박훈 변호사는 간이 마이크를 잡고 "당신들은 오늘 이곳을 짓밟겠지만 우리는 매 순간을 기억에 담을 것이다"는 결의에 찬 말을 남겼다. 하지만 밀양시청 건축과장 이름의 행정대집행 계고장 낭독이 끝나자마자 연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끌려 나왔다.

오전 9시 10분 천막 제일 안쪽에 있던 밀양 할머니 7명 중 3명이 윗옷을 벗으며 저항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가 먼저 끌려 나오더니 수녀 4명과 할머니들이 여경 등에 의해 결국 천막 밖으로 끌려나왔다.

실신 직전인 할머니를 안고 "호흡 곤란이 심하다. 들것을 요구한 지 10분이 다 됐는데도 왜 들것을 보내주지 않느냐"는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의 외마디가 127번 공사 현장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경찰 발에 미사 촛불이 꺼졌다...부당함 지적하자 "법대로 하라"

◇낮 12시 30분 '115번 농성장' = 이제 115번 차례였다. 할매·할배, 신부·수녀, 활동가 70여 명이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과 맞물렸다.

한 주민은 "공무원들은 밥 안 먹고는 일 안 한다"며 점심 지나 올 것이라 예상했다. 낮 12시 10분이 지나자 농성장에 있던 활동가는 "밥 다 먹었다고 한다. 일어나서 준비하자"라고 알렸다. 정보과 형사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가가 다른 농성장 철거 과정에서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보과 형사는 "나중에 법대로 하라"고 했다.

한쪽에서는 조촐한 미사가 진행됐다. 그 와중에 경찰이 우르르 몰려왔다. 경찰관 발에 차여 미사 촛불이 꺼졌다. 경찰 현장 지휘관은 "신부님·수녀님 조심해서 모셔"라고 했다. 하지만 현장은 곧 엉키면서 수녀들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이게 모시는 거냐"라고 외쳤다. 수녀 한 명은 팔 골절을 호소하며 응급차에 실려갔다.

반대 주민 "다 죽이고 공사하라"오후 5시 마지막 움막까지 철거

◇오후 4시 25분 '101번 농성장' = 오후 1시 30분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용회마을 뒷산 101번 송전탑 공사 현장 천막 농성장에는 70명 남짓한 주민과 연대자들이 모여 있었다.

115번 공사현장 소식을 접한 이들은 다소 불안해했다. 몇몇은 "이제 우리만 남았다. 우리마저 밀양을 허무하게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오후 3시 50분 경찰과 한전 직원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천막 쪽으로 와서 대치하자 "다 죽이고 공사하라"는 구호가 쏟아졌다.

천주교 부산교구 밀양 감물리 생태학습관장인 조성제 신부는 "왜 경찰이 여기에 와서 한전 밑 닦아주는 일을 하느냐. 밀양서장은 우리 앞으로 와서 면담하자"고 했다.

10여 분간 말싸움이 이어졌고 오후 4시 25분 밀양시청 관계자가 행정대집행 시행을 발표했다.

마지막 남은 천막 농성장인 만큼 다른 농성장보다 저항이 다소 격렬했다. 연대자 중 일부는 목 부위 등을 다쳐 헬기로 옮겨지기도 했다.

민변·인권단체 관계자, 장하나 의원 보좌관, 김재연 의원과 연대자들 외침은 안타까움만 더했다.

오후 5시께 마지막 남은 천막 한 동도 뜯겼다. 정부와 한전을 향한 증오와 분노만 남은 주민과 연대자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전 공사 관계자들은 한편에서 무심하게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웽'하는 기계톱 소리는 산 전체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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