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남해군 환경수도과 유민욱

"나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수평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있어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우리 환경수도과 직원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 주었고, 특히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분위기인데다 직원 간 관계도 좋아서 훨씬 적응하기 편했습니다."

서울 출신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 살인 유민욱(사진) 씨는 올해 1월 말 남해군에 들어온 늦깎이 공무원이다. 남해군 환경수도과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늦은 나이에 공직 생활에 첫발을 디뎠으나 함께 들어온 동기 중에 수석으로 합격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특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보통 2~3년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는 단 6개월 만에 1차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그의 미래 모습에 공무원은 없었다.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 전 그는 서울에서 꽤 알려진 유명한 학원강사였다.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가르치는 강사는 아니었고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사주팔자나 점 보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강사는 아니고 쉽게 말해서 공자나 맹자,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토론하는 수업이 저의 일이었습니다."

학원강사로 명성을 얻으면서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점심시간 30분을 빼고 수업을 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서울의 유명 강사들이 그렇듯 당연히 수입도 크게 늘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했다. 더욱이 전남 보성군에서 공무원으로 있는 아내 덕택에 남부럽지 않은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했다. 주말부부라는 점만 빼면 모든 게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불행은 그의 미래를 완전히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다.

평소 건강했던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이다.

"회사에서 동료 강사들과 회의 중이었는데, 아내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가슴에서 암이 발견됐다며 울먹였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그 전날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슴 한쪽을 들어낼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았고 암세포도 악성이 아닌 게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수술 후 그는 건강을 위해 아내에게 공무원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아내는 "강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며 거절했고, 그가 "공무원이 되면 그만둘 수 있느냐"고 얘기하자 그렇게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길로 그는 강사 일을 접고 무작정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일을 그만둘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을 오롯이 가슴에 새기며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다.

최종 합격하던 날 그는 아내에게 "그만둘 거지"하고 물었지만 아내는 "생각해 본다고 했지 그만둔다고 하진 않았어. 주말부부 생활을 안 하는 것만도 행복해"라며 돌변했다.

그는 아내의 불행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됐으나 스스로 선택한 만큼 공무원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제가 경계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입 치곤 많은 나이에 나이 대우를 기대해서 서푼어치도 안 되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자는 것이 첫 번째 마음가짐입니다. 두 번째로 민원인에 대한 분별심을 가져서 차별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되기 전 저의 주 고객은 학생이었습니다. 존중의 대상이기보다 가르침의 대상이었죠. 행여 제가 민원인을 비롯한 군민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모두가 대등한 존재라는 점을 가슴 속에 깊게 새겨서 공정한 행정을 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특히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직생활이지만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곧고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동료와 민원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좋은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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