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2) 창녕 영산 만년교·석빙고·신씨고가와 관룡사·옥천사지

지역아동센터와 함께하는 토요 동구밖 교실의 역사탐방의 시작은 창녕에서 했다. 영산면에 있는 만년교와 석빙고, 신씨고가를 둘러본 다음 화왕산 옥천 골짜기로 옮겨 관룡사와 옥천사지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만년교는 영산호국공원에 있다. 이번에 참가한 산호와 새샘 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모두 26명. 서넛씩을 모아 모두 여덟 모둠으로 나누고 지역아동센터와 두산 사회봉사단 선생님이 한 명씩 맡았다. 학년과 성별을 두루 고려해 미리 편성한 모둠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유대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데는 이 방법이 최고다.

영산 만년교를 건너는 아이들.
영산 만년교를 건너는 모습.

◎ 자기 힘으로 하도록 돕는 미션 수행

과제를 적은 종이가 모둠별로 주어지자 아이 어른 구분없이 한 덩어리가 돼 달려간다. 자기 힘으로 찾고 자기 눈으로 새기고 자기 발로 밟아보라고 내는 과제다. 이렇게 하지 않고 앞에 서서 "234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무지개(홍예=虹霓)를 닮아 무지개다리라 하지만 처음에는 남천에 세워진 돌다리라 남천석교(南川石橋)라 했다. 앞에 빗돌 글씨는 열세 살 어린아이가 썼는데…." 이렇게 늘어놓으면 앞에 몇몇만 귀를 기울일 따름이다. 이런 탐방은 이제 그만. 즐겁게 노닐며 누리는 가운데 몸 속 세포에 하나만 새겨져도 성공이다.

아이들이 미션을 풀고 있는 모습.

영산호국공원은 6·25전쟁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는 야트막한 산마루까지 쳐도 20분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그러나 미션 수행을 하면 달라진다. 만년교 기본 지식을 일러주는 문제는 물론 돌다리를 오르내리며 찬찬히 흙을 밟아야 풀 수 있는 문제도 있고 호국공원 이름이 어쩌다 붙었는지 알아보게 하는 문제도 있다. 아이들은 40분 남짓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답을 찾았다.

◎ 밋밋한 석빙고도 알고 보니 재미가 깨소금

다음은 영산 석빙고. 모르고 가면 커다란 무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석빙고 공부는 옮겨가는 버스에서 미리 한다. 내려서는 그냥 현장을 살펴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도록…. 빙고(氷庫)는 얼음 곳간이다. 섶으로도 지었지만 돌로도 지었다. 돌로 만든 얼음 곳간이 바로 석빙고인데, 우리나라에는 모두 여섯 개만 남아 있는데 공통점이 뭘까? 땅을 파 만들면서 바닥을 기울어지게 만들었는데 왜 그럴까? 질문을 했더니 갖가지 대답이 쏟아지지만 정답은 없다.

영산 석빙고를 둘러보는 일행.
영산 석빙고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일행.

얼음 창고지만 얼음이 조금씩 녹을 수밖에 없는데 바닥이 기울어져 있지 않으면 내부 바닥이 물바다가 되기 때문이라 했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아~그렇네' 합창이다. 다른 공통점은 없을까? 모든 석빙고는 개울을 끼고 있다. 얼음 녹은 물을 그리로 빼냈다. 공통점은 더 있다. 모두 경상도에 있다. 경북 안동·경주·청도, 대구 달성군 현풍면, 경남 창녕 창녕읍과 영산면에 하나씩. 이것도 아이들은 신기하다.

설명 덕분인지 가장 심심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 냉장고 석빙고에서 아이들은 열광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가장 인상 깊은 하나를 꼽으랬더니 영산석빙고가 단연 많았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안쪽을 들여다보며 거기서 나오는 시원한 기운에 땀도 식혔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 즐겁고 무덤 같은 안에서 찬 기운이 뻗치니 신기하다. 잔디를 입힌 석빙고 위에 올라가 예쁜 척 잘난 척도 한다.

영산 신씨고가를 둘러보는 아이들.

이어지는 영산 신씨고가에서 핵심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진 이일수록 책임·의무가 깊고, 사회 공헌 또는 환원이 더 커야 한다. 여기 살았던 영산 신씨 집안 참봉공 신정식의 선행은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송덕비에 구구절절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그 덕을 입은 소작농과 과객(=길손)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作客等立). 참봉공이 말려 생전에는 못 세우고 죽은 뒤인 1954년 빗돌을 새겼다.

◎ 관룡사·옥천사지 자세히 뜯어보기

영산 연지가 있는 거리 신동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관룡사로 갔다. 들머리 양 옆 석장승을 보면서 남자 여자를 맞혀보고 그 까닭을 대게 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해 봐야만 틀리든 맞히든 대답을 할 수 있는 문제다. 관룡사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간단하게 게임을 했다. 물론 당연히 모둠별로 한다. 어느새 모둠들은 아이들과 담당 선생님이 하나 되어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다. 공부도 놀이도 즐거운 것이 최고다. 잘 놀아야 잘 산다.

관룡사 명물 들머리 석장승 앞에서 설명을 듣는 아이들.

설명은 관룡사 절문 밖에서 마쳤다. 안에서는 아이들과 담당 선생님이 합동 미션 수행! 압권은 마지막 문제다. 대웅전 부처님 손 모양(수지인·手指印)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눈대중으로 보고 와서 손모양을 지어보이려니 간단한 것 같아도 자꾸만 꼬이고 뒤엉킨다. 몇 번을 되풀이 보고 와서야 겨우 성공한다. 사물을 좀 제대로 보는 연습이 됐으려나? 마지막 들른 데는 옥천사지. 고려시대 스님 신돈이 살았다는 옥천사, 어머니가 옥천사 종이었던 인연으로 옥천사에서 나고 살았다는 신돈이다. 이렇게 한 번 누리고 나면 나중에 학교에서 교과서로 신돈을 공부할 때 옥천사지가 한 번은 떠오르겠지.

신돈은 개혁 군주 공민왕을 도와 권문세족의 부정부패를 쓸어없애고 백성을 위해 개혁하려 했던 인물이다. 꿈은 이뤄지지 못했고 임금의 신임을 잃은 뒤 죽임을 당하면서 옥천사도 폐허가 된다. 신돈과 개혁을 깊이 원망했던 당대 권문세족은 옥천사를 완벽하게 망가뜨렸고 그 자취는 지금도 폐사지 곳곳에 널려 있다. 뒤집어진 연자맷돌, 깨어진 석등, 그나마 반듯하게 남은 주춧돌, 윗부분은 사라진 석탑 아랫도리 따위는 아이들 눈에도 흥미롭게 비쳤다.

옥천 골짜기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

옥천사지 옆 도로 건너편은 바로 옥천 골짜기. 이른 더위에 물놀이는 아이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신발을 벗고 물로 들어가는 입가에 웃음이 한 모금 물렸다.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하루 나들이를 돌아보는 글까지 쓰는 친구들, 앞으로 함께 많은 추억 만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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