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창업 준비하는 조리사 이영탁 씨

"열심히 노력하면 나중에 활짝 웃을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조리사 이영탁(41·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씨의 눈은 피곤해 보였지만,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지금은 낙지 전문점 창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올해 7월, 늦어도 8월에 개업할 계획입니다. 전국을 다전며 시장조사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준비기간이 너무 길지 않으냐고 걱정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고등학교 시절 영탁 씨 장래 희망은 '미술가'였다. 미술학원을 다니며 미대 진학 꿈을 키웠지만 입학시험에 탈락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통영에 있던 '미화당백화점' 총무과에 들어갔다. 영탁 씨는 그곳에서 백화점 인테리어 업무를 봤다. 하지만 1997년 백화점 부도로 3년만에 일을 접었다. 고향 창원으로 돌아온 영탁 씨는 우연히 국가에서 지원하는 무료 자격증 교육과정을 알게 됐다.

"요리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교육 과정이 있었지만, 유독 조리사 자격증 교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식조리기능사 교육을 신청했고, 이듬해 2월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곧바로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대우백화점에 있던 '빠스또레'라는 레스토랑에 조리사로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큰 레스토랑이 생기면서 영탁 씨가 일하던 가게의 운영이 어려워졌다. 영탁 씨는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이때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생긴 영탁 씨는 곧바로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단체급식회사에 입사했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주겠다는 회사 측 말을 믿었다. 하지만 7년을 몸담았던 회사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상심한 영탁 씨는 다른 단체급식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에서 급식소를 운영하던 회사였습니다. 저녁 배식을 끝내고 퇴근하면 6시 30분이었습니다. 곧바로 창원 상남동에 있는 술집에 나가 조리사로 새벽 2시까지 일했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버텨야 했다. 지켜야 할 가족이 늘었기 때문이다. "연년생 두 아들이 있습니다. 분유나 기저귀를 구입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힘든 티 안내려고 했는데, 아내가 보기에 그 모습도 안쓰러웠나봅니다. 자기도 일해서 돕겠다고 우겼지만, 애들은 누가 돌보냐고 말렸죠."

STX가 자체급식을 시작하면서 직장을 그만둔 영탁 씨. 그때부터는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했다. 오후 늦게 호텔 바 조리사로 일하고, 새벽 2시에 마쳐 집에 들어오는 길에 종합정보지를 배달했다. 쪽잠을 자고 일어나 오전에 녹즙음료를 배달했다.

"6개월 정도 그렇게 일하고 1개월 남짓 쉬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마흔 넘어가면서 그런 생활이 힘에 부치더군요."

2011년 영탁 씨는 전세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 돈으로 창원시 상남동에 돼지고기 전문점을 개업했다.

"'내' 일을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조리사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내가 낸데'하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연 지 10개월 만에 폐업신고를 했습니다. 장사는 안 되는데 인건비니 재료비니 많게는 한 달에 1000만 원씩 들어갔습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군요. 폐업신고하면서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영탁 씨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요즘 시장조사 하면서 성공한 가게를 많이 가봤습니다.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설거지할 시간도 없이 바쁜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큰 욕심 내지 않을 겁니다. 꾸준히 오랫동안 영업할 수 있는 나만의 가게를 차리자고 다짐했습니다."

영탁 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시장조사를 가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바쁜 영탁 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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