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내 맘대로 여행] (18) 충청남도 부여군 궁남지

사각 프레임 안에 가두기에 신록은 찬란하다. 렌즈와 맞대고 바라보는 절경은 그 감흥이 살짝 옅어진다. 그뿐인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미 몸은 오감을 총동원해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짙은 녹음의 향기, 청량한 자연의 소리, 온몸을 감싸는 따사로운 햇살.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들이 시작됐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씨지만 이토록 '눈부신 찰나'를 놓칠 순 없다.

충남 부여의 궁남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찍으면 바로 그림이 되는 사진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소박하면서도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할 수 있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 35년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선인이 사는 곳을 상징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 만든 왕궁의 정원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든 것으로 삼국 중에서도 백제가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 의미있는 곳이다.

   

"초록의 폭신한 이 길을 사뿐히 지르밟고 오시옵소서."

궁남지에 들어서면 '그린카펫'이 깔린 듯 신록의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홍련과 백련, 빅토리아연 등 이제 막 봉오리를 틔운 연꽃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연꽃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저 멀리 햇살이 부서져 보석처럼 빛나는 연못이 유혹하는 대로 발길이 옮겨지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화하였다는 연못, 궁남지. 연못을 에둘러 초록의 머리를 늘어뜨린 수양버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한가운데는 포룡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사비시대에 왕궁 남쪽 못 가에는 궁궐에서 나와 혼자 사는 여인이 궁남지의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 장이다."

아명이 서동이었던 무왕의 어머니가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왕이거나 태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궁궐 밖의 생활이 궁핍했으므로 생계유지를 위해 그는 마를 캐다 팔았다. 그래서 그의 아명이 서동이 되었던 것이다. 서동의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그를 정성으로 키웠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한 장부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궁중에서 한 노신이 찾아와 왕의 밀명을 전하였는데 신라의 서라벌에 잠입해 국정을 탐지하라는 것이었다. 서동은 기꺼이 받아들여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마주치게 됐고 사랑이 싹텄다. 국적과 신분이 달라 맺어질 수 없었던 그들. 그러나 헤어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지혜를 짜내 서동요를 만들어 퍼뜨리기로 다짐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 아이들 입을 통해 이 노래는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고 대궐까지 알려지게 되어 오해를 받게 된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랑이야기가 이곳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연못 한가운데로 청량한 바람이 스친다. 어느새 인기척을 느낀 물고기들이 다리 밑으로 모여든다.

수양버들은 가지만 꺾어서 어느 곳에 심어도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을 가진 나무다. 연꽃은 질퍽한 진흙 속에서 더럽혀지지 않고 청초한 듯 우아한 꽃을 피워낸다. 자연의 이치가 예사로이 느껴지지 않는 시절이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부여서동치꽃축제가 내달 17일부터 나흘 동안 1000만 송이 연꽃으로 장식된 서동 공원(궁남지) 일원에서 열린다.

   

◇국립부여박물관과 부소산성 = 궁남지에서 5분여 차를 타고 달리면 부여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있다. 또 그곳에서 2km 남짓 달리면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의 전설을 간직한 부소산성이 있다.

백제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던 곳, 그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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