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1) 하동 최참판댁과 사천 비토섬 광포만

두산중공업이 지역 사회를 위해 마련한 '지역아동센터와 함께하는 토요 동구밖 교실' 프로젝트에는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회·과학, 전통문화, 역사탐방, 생태체험, 창원투어, 공예체험, 자연물체험 일곱 가운데 역사와 생태 두 가지를 맡았다. 기업들이 자기가 있는 지역 사회를 위하는 활동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키자는 취지로 6월부터 생태체험 역사탐방을 보도한다. 해딴에는 경남도민일보 자회사로 경남형 예비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섬진강·악양천이 낳은 하동 최참판댁

5월 17일 옛 마산 지역 마산행복한지역아동센터·상남지역아동센터 25명은 하동 최참판댁과 사천 비토섬·광포만으로 떠났다. 두산중 원자력사업본부 사회봉사단 7명도 함께했다. 해딴에의 신조 '잘 놀아야 잘 산다'처럼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닫혀 있는 도시 공간을 잠시나마 벗어나 자연 속에서 즐겁게 노닐며 살아 움직이는 것들 온몸으로 느껴보고 친해지면 그만이다.

필요한 설명은 버스 안에서 간단하게 하고 핵심을 짚었다. '박경리라는 사람이 소설 <토지>를 썼는데 무대가 하동 평사리다. 물론 꾸며낸 얘기인데 이를 바탕삼아 원래는 없던 최참판댁과 소작농가들을 들이세웠다, 악양천이 섬진강과 만나며 드넓은 악양들판을 내었는데, 이런 습지가 없었다면 최참판댁 또한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비토섬에서 가로수 우거진 길을 걷는 모습.

어쩌면 어려울 수 있겠는데도 귀기울여 들어준다. 버스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할 즈음에는 왼편 차창을 통해 섬진강을 볼 수 있었다. 길게 휘어지는 강줄기와 갈대밭이나 솔밭 따위가 느긋하게 어우러진다. 버스는 봄철 분홍 꽃 대신 푸른 잎으로 풍성해진 벚나무 그늘을 지나 최참판댁 위편 한산사 들머리 전망대에 닿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섬진강 유장한 몸짓과 악양들판 한쪽에 들어선 동정호·부부송을 짧지만 시원하게 담은 뒤 뒷문을 통해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머리나 눈이 아니라 손이 먼저였다. 길가에 늘어선 꽃에도 손이 갔고 소작농가에 마련된 토끼장에서도 손이 먼저 나갔다. 왕방울 눈을 굴리며 코뚜레에 매인 소에게서도 목덜미나 콧잔등을 쓰다듬는 손이 먼저였다.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하는 소리와 함께, 때로는 무섭다거나 징그럽다는 소리도 들린다.

최참판 분장을 한 어른이 나눠주는 건빵을 받는 아이들.

미션 수행과 함께 놀이도 즐기고

최참판댁에 들어선 아이들은 사회봉사단 선생님과 더불어 '미션 수행'에 열중한다. 선생님들은 아이를 서넛씩 맡아 길잡이 노릇을 했다. 소설 <토지>의 단편들을 일러주며 낸 미션은 ①여자 주인공 서희 엄마가 살던 건물 ②서희 아버지 최참판댁이 하녀 귀녀한테 죽임을 당한 장소 ③남자가 살던 사랑채와 여자가 살던 안채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 셋이었다. 선생님 손을 잡은 아이들은 사랑채·안채·별당·사당·초당·행랑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다.

그러면서 최참판으로 분장한 어른한테 건빵을 얻어먹으며 전통 예절도 익히고 마당에 놓인 굴렁쇠나 제기도 갖고 놀고 다듬잇돌 있는 데서는 방망이로 다듬이질도 한바탕 해본다. 몸을 놀려 움직이는 것이 으뜸인 아이들이다. 별당이나 사랑채 누마루에 올라 연못이나 바깥 풍경도 내다보고 안채 마루나 행랑채 축대에 엉덩이를 댄 채 재잘거리는 축도 물론 없지 않다.

참가 학생들이 굴렁쇠를 굴리는 모습.

토지장터식당에서 점심을 나름 맛나게 먹은 다음 비토섬과 광포섬이 있는 사천으로 간다. 버스에서는 이야기가 길지 않게 이어진다. '비토섬은 토끼와 자라 이야기(별주부전)가 생겨난 데고 광포만은 남해에서 가장 너른 갯벌을 품었으며 여기 갯잔디는 바닷물에 하루 두 차례 잠기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다, 가지가지 게와 말뚝망둥어가 펄을 뒤집어쓰고 나올 것이다.'

갖은 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비토섬 갯벌

토끼와 자라 이야기가 직접 서려 있는 비토섬 끄트머리 월등도. 비토섬 본섬은 썰물 때면 월등도와 이어져 걸어 건널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물이 빠지는 그 들머리에서 고인 바닷물과 갯벌을 둘러싸고 쪼그려앉았다. 미션은 '살아 있는 생물을 최대한 많이 만져보고 특징 또는 종류를 표현해 보기'. 펄이 많은 갯벌도 있고 모래·자갈이 많은 갯벌도 있다. 꼼지락거리는 조개와 게들이 여러 가지 많았다. 물고기가 여러 마리 들어 있는 고인 물도 있었는데 고기들 노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비토섬에서 조개와 게를 잡는 아이들.

광포만은 비토섬에서 멀지 않다. '콩게·방게·길게·농게·칠게 같은 갖은 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 속을 헤엄치지 않고 펄 속을 뛰어다니는 별난 물고기 말뚝망둥어도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했더니 "우와" 소리가 터진다. 이어서 '대신 조용히 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숨어버린다'고 내리면서 일러줬더니 아이들은 내려 걸을 때 잠깐을 빼고는 줄곧 조용했다. 갯벌과 생물에 대한 넘쳐나는 호기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광포만 갯벌에서 게와 말뚝망둥어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

말뚝망둥어 앞에서 숨죽이는 아이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갯벌을 향해 뻗은 콘크리트를 따라 들어가 양쪽으로 가만히 앉기까지 했다. 비토섬에서는 몸을 움직이며 손으로 잡아보고 촉감을 느꼈다면 광포만 갯벌에서는 몸을 가만히 한 채 갯벌과 생물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었다. 따라온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 이런 모습이 참 예뻐요!" 했다.

토지 장터 식당에서 배를 채우는 아이들.

아이들 마중나온 말뚝망둥어가 바로 앞에서 팔딱대며 잡아보고 싶게 만들었지만 움직임이 재빨라 실제로 잡혀주지는 않았다. 한 차례 손을 뻗었던 한 아이는 "아휴~" 아쉬운 한숨을 토해냈다. 게들은 움직임이 가까운 데서는 아무래도 경계를 하는지 많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3~4m만 멀리 보면 콩만한 게들이 쳐드는 앞발과 끄덕이는 몸통으로 갯벌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햇살에 빛나기도 했는데 퍼먹은 개흙에서 영양분은 자기것 삼고 개흙은 내보낸다. 바다를 깨끗하게 하고 갯벌을 살아 있게 하는 핵심 작업인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최참판댁과 비토섬에서 했던 미션으로 얘기를 풀었다. '서희 엄마가 산 데는 별당, 최참판이 죽임을 당한 건물은 초당, 안채는 기둥이 네모나고 사랑채 기둥은 둥근 점이 다른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서 왔다, 남존여비로 볼 수도 있지만 실은 남자 여자 구실이 그렇다….'

비토섬 미션 관련해서는 모둠별로 작성한 답안지에 사회봉사단 선생님들이 잘했다고 여겨지는 순서대로 스티커를 붙였다. 잡아본 생물들 그림을 열심히 그린 모둠과 글로 종류와 특징을 많이 적은 모둠 둘이 뽑혔다. 액수는 콧구멍만하지만 격려하는 뜻은 하늘만큼 담긴 소박한 장학금이 손뼉치는 소리 속에 두 모둠에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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