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극단 예도 리뷰

지난달 31일 오후 2시 거제 극단 예도의 초연작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작 이선경·연출 이삼우)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배우들을 만나고자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 뒤편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극단 연출가와 배우가 다투고 있다. '낡은 연출'이라며 선배 연출가에게 달려드는 후배 때문에 무대 분위기가 냉랭하다. 순간 긴장한 채 눈치를 살폈지만, 알고 봤더니 극의 한 장면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의 무대'에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는 지난 3월 거창에서 열린 경남연극제 무대에 처음 올랐다. 보완을 거쳐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관객들을 맞았다.

극단 예도 이삼우 연출가. /박정연 기자

◇첫사랑,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이야기 = 그 남자의 첫사랑. 너무 흔한 소재라 오히려 궁금했다. 극단 예도의 간판인 이삼우의 연출력이 어떻게 발휘될지가 관건이었다.

1987년, 주인공 진석이 대학에 들어간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에 연극 동아리에 들었다. 동아리에서 만난 은수는 똑 부러지는 게 선배들한테도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20대 그들의 사랑 속에는 '연극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연극은 '시대정신'을 논해야 한다는 선배 연출가와 '사랑 이야기'로 충분하다고 반박하는 후배의 모습. 어쩌면 극단 예도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30대인 두 사람은 '돈의 벽'을 넘지 못한다. 광주가 고향인 은수네 식구들은 경남 합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진석을 반대한다. 합천 사람 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은수(배우 이상희·왼쪽)와 30대 진석(배우 송대영). /극단 예도

하지만 유능한 영화 감독이라는 말에 가족들은 진석을 받아들인다. 실제 진석은 여전히 '돈 못 버는' 극단에서 일하지만, 은수는 '돈 잘 버는' 감독으로 부모에게 소개했다.

두 사람의 갈등 주변에는 사회 문제도 자연스레 등장한다. '웃음의 대명사' 이삼우 연출가의 면모가 해학으로 넘쳐난다.

은수에게 프러포즈하려던 반지를 강 아래로 내던지려는 진석. 그 옆에서 포장마차 주인이 식용유 통을 든 채 진석과 실랑이를 벌인다. 경찰은 위험하다고 그대로 있으라 경고 메시지를 보내며, 기자는 두 남자가 분신을 하려 한다고 속보를 전한다. 관객은 박장대소한다.

웃음의 반대는 울음이라 했나. 진석은 빚에 허덕이며 남편과 갈등하다 세상을 떠난 은수를 영정 사진으로 만난다. 은수는 죽기 전 진석에게 한 번만 보고 싶다고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장례식장 문밖으로 나선 진석은 비루하게 살다 고향 거제로 돌아와 연극을 다시 시작한다. 40대 진석 때문에 객석 곳곳이 흐느꼈다.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는 극단의 단원들이 이야기를 펼치는 주인공이다. /극단 예도

◇얼굴없는 주인공, 누구나 진석일 수 있는 이야기 = 진석은 극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극이 시작되면, 어느 한 극단이 한창 연극 연습 중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무대 위에선 실수가 연발한다.

이때 "일개 코러스가 창의적인 생각하지마"라는 고함이 터진다. 하지만 그렇게 고함치는 진석은 무대 위에 없다.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 진석과 대화하는 무대 위의 배우들로 순식간에 객석까지 무대에 편입됐다. 보통 관객들은 무대 앞쪽을 바라보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감흥을 얻지만, 객석 뒤에서 들리는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는 도입부의 새로운 묘미였다. 남자 주인공 진석이 끝내 등장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진석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50대의 진석은 단원들과 언쟁을 벌이고 자리를 비운다. 막내 단원이 진석이 오랫동안 극단을 떠나 있던 이유를 궁금해한다. 선배 코러스 단원들이 진석과 은수의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극에서 이름도 없는 코러스3(배우 김종필)은 20대의 진석을 연기한다. 코러스4(송대영)는 30대의 진석을, 코러스1(이삼우)은 40대의 진석이 되어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러스2(진애숙), 코러스5(황지영), 코러스6(백연화), 코러스7(김현수), 코러스8(서성화)은 진석의 첫사랑 이야기를 푸는 단원들이자, '무대 위의 무대' 속 주인공이 된다.

여주인공 은수는 진석의 기억 속에 변치 않는 인물로 배우 이상희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 오른다.

이삼우 연출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존경하는 어느 형의 실화를 바탕으로 단원들이 함께 이야기를 꾸몄다. 늘 코러스 역할을 맡지만 주인공을 꿈꾸는 단원들. 어떤 연극을 할 것인가 늘 고민하는 극단 예도의 모습들을 담았기에 단원 모두 자기 얘기를 하듯 임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는 첫사랑 이야기이자 극단 예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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