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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서 보는 낙동강 물길에 할 말 잊어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 기행] (3) 경북 상주·예천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5월 27일 화요일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지원하고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갱상도문화공동체해딴에가 진행하는 생태·역사기행 세 번째는 낙동강 상류 경북 상주와 예천을 찾았다. 물과 뭍이 어우러져 풀어놓는 습지 풍경과, 거기 터잡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였다. 시원한 강바람과 까칠까칠한 모래밭이 누릴 만했다. 그리고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이런저런 개발이 자연에 끼치는 악영향도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5월 21일 45명을 태운 버스는 오전 10시 40분께 상주 경천대(擎天臺)에 닿았다. 낙동강 1300리 물줄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곳에 도착도 하기 전에 조금씩 들떠 있었다. 여기 낙동강 풍경이 바위절벽과 너른 들판,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세, 넉넉한 물길 등을 두루 갖추고 있음을 이미 잘 알기 때문이겠다. 정문을 지나 왼쪽 오솔길로 천주봉 전망대에 이른 이들은 휘감아도는 강물과 물이 찰랑거리는 논들을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맞이했다. 오솔길에서는 바닥에 깔린 흙과 솔갈비가 주는 보드랍거나 까끌까끌한 느낌을 신발을 벗고 맨발로 즐기기도 했다.

   
  경천대에서 넋을 놓고 강물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그렇지만 으뜸은 낙동강에 바짝 붙은 벼랑 경천대와 그 옆 무우정(舞雩亭)이었다. 사람들은 여기 벼랑 끝에 서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마치 할 말을 잊은 듯이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앞서 전망대서는 웃음이나 감탄사라도 터졌지만, 여기서는 그냥 다들 멀거나 가까운 풍경을 눈에 담기 바빴던 것이다. 햇살은 구름에 가려져 부드러웠고 물줄기를 타고 밀려오는 강바람은 몸을 휘감으며 지나갔다. 무우정에서는 앞뒤로 둘러선 나무들 그늘을 그윽하게 즐긴다. 지붕 위에 피어난 노란 꽃이 색달랐는데, 거기서는 강물 흐름의 푸근함을 누릴 수 있었다.

경천대에는 임진왜란으로 명나라가 망한 자리에 새로 들어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봉림대군을 모셨던 한 선비(우담 채득기)의 자취가 있다. 명나라 망한 까닭이 여럿 있지만, 임진왜란 탓이 적지 않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명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서 횡포를 퍽 부리기는 했지만, 조선 선비로서는 '명나라가 조선을 지켜주는 바람에 망하고 말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을 테고, 그것이 여기 새겨져 있다. 경천대를 알리는 자연 빗돌에다, '大明天地 崇禎日月(대명천지 숭정일월)'을 세로로 두 줄 적었다.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연호이니까, 뜻은 대충 이렇다. '대국 명나라 천지에 해와 달 같은 숭정 황제여.' 지금은 누구나 조선 선비들의 이런 사대주의를 아무렇게나 비판해 대지만, 동아시아를 뒤흔든 끔찍한 전재를 온 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당시 사람들은 의리나 명분 아니라도 명나라를 끔찍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겠지 싶다.

다만 2010년만 해도 경천대 이쪽저쪽에 너른 모래밭이 있어서 그 풍경이 한결 넉넉하고 조화로웠는데, 4대강 사업을 끝낸 지금은 물고기가 파들고 더러운 물질을 거르던 모래가 사라져 아쉬웠다. 바로 아래 들어선 상주보가 물을 가두는 바람에 경천대 앞은 고인 물이 내는 푸른 빛으로 강심조차 깊었다.

   
  회룡포 뿅뿅다리와 둘레 모래밭에서 노닐고 있다.  

점심은 예천군 용궁(龍宮)면 용궁단골식당에서 먹었다. 아주 유명한 밥집인데 평일에도 줄 서서 기다린 끝에야 국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때가 잦다. 바닷가도 아니고 내륙 한가운데 용궁이 있다니 재미있는 노릇이다. 원래는 독립된 용궁현이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 예천군에 더해졌다. 용담소·용두소 두 여울에 사는 용들이 이룩한 수중 용궁 같은 지상낙원을 지향하는 지명이라 한다. 여기서는 파출소도 '용궁'파출소고 면사무소도 이름이 '용궁'이다. 이처럼 '용궁'이 붙은 간판이 많은데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울린다. 또 용궁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100% 국산 재료로 만드는 '토끼간빵'은 요즘 새롭게 뜨는 이곳 명물이다.

뭐니뭐니 해도 이날 정점을 찍은 데는 예천 회룡포, 모래가 풍성한 내성천이었다. 내성천 상류 영주 소백산은 이름에 들어 있는 흰(白)색에서 나름 짐작되듯, 쉽사리 잘게 부서지는 사암(砂岩)이 대부분이다. 들어서고 있는 영주댐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낙동강 모래 절반이 여기서 나온다. 그만큼 모래가 풍성도 하고 굵기도 해서 하류 자잘하고 고운 모래가 익숙한 이들에게는 색다른 체험이 됐던 것이다.

   
  무우정 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앞뒤로 나무가 우거져 있다.  

뿅뿅다리를 건너 제방 따라 걸은 다음 마을을 가로질러 돌아온 뒤 바짓가랑이를 걷고 신발을 벗은 채 얕게 흐르는 물로 들어갔다. 어떤 이는 구멍이 숭숭 뚫린 다리에 앉아 얘기를 나눴고 어떤 이들은 마주보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거기 움직이는 꽤 큰 물고기들을 헤아리기도 했고, 그런 녀석들 사진에 담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물살이 빠른 데는 모래가 발을 디디면 쉽사리 쑥 들어갔고 느린 데서는 발이 깊이는 빠지지 않았다. 발가락을 간질이는 감촉이 까칠까칠하니 좋은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발등 위를 구르며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모래가 잘 보이는 데는 아무래도 빠른 물길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으로 모래를 이리저리 퍼나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기야, 예닐곱 해 전만 해도 여기서 돈짝만한 재첩이 잡혔다 하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삼강주막에 들렀다. 내성천이 낙동강에다 몸을 푸는, 두 물이 만나 세 흐름이 되는 자리다. 1900년대 지어진 주막 건물이 나지막하고 보부상 숙소와 뱃사공 숙소는 복원이 됐다. 옛적 동네 남자들 어른이 됐는지 여부를 갈라주던 들돌이 오지게 있고 뒤편 엄청나게 큰 당산나무에는 아낙 몇몇이 들러붙어 소원을 이뤄주십사 빌고 있다. 1990년대 진짜 삼강주막에서 술밥 팔던 할머니는 이제 없지만, 사람들은 새로 생긴 주막에 들러 1만4000원짜리 한 상을 즐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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