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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톨퍼들의 순교자들

임금개선 위해 농업노동자회 결성…유배생활 고초 노동조합 탄생 계기

이성철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webmaster@idomin.com 2014년 05월 22일 목요일

영국 최남단 사우스 웨일스 주의 도싯이라는 마을은 소설 <테스>로 잘 알려진 토마스 하디의 고향이다. 마을의 풍광은 매우 빼어나서 곳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전통적인 산업은 농업이었지만 최근 들어 이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관광산업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180여 년 전 이곳의 톨퍼들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1833년 이곳의 감리교 목사였고 농부이기도 했던 조지 러브리스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자신들을 고용한 농장주를 찾아가서 주급으로 받던 10실링이 왜 갈수록 삭감되는지를 따졌다. 이에 농장주는 영국 국교회 소속의 교구 목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다시 주급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다음 주에 이들이 받게 된 임금은 오히려 더 떨어진 7실링이었다.

이에 러브리스는 농업노동자들의 상태를 개선하고자 농업노동자 친우회를 결성하게 된다. 신참자들은 서약을 통해 입회하게 된다. 노동조합도 아니었고 단지 우애 도모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이 일은 이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진다. 농장주와 당시의 휘그 내각은 러브리스를 포함한 주모자 6명에게 이들이 서약 금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중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서약 금지법은 이미 오래전에 사문화된 것이었지만 죽은 법을 살려내어 이들을 영국의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로 유배를 보내버린다. 7년간의 유배형이었고 14주간에 걸친 긴 항해였다. 자신들의 농장주에게 대항한 이들의 움직임은 이것으로 끝난 듯이 보였지만 오히려 새로운 사태들을 만들어내고 만다. 이러한 사태들이 일어난 당시 영국사회의 배경은 종획운동(엔클로저 운동)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던 때였고, 기계파괴운동이 차츰 진정되고 있던 시기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은 양질의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대량 창출하게 된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기계파괴운동은 전통적인 수공업 장인들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1800년대 초 농업부문에도 탈곡기 등이 기계화됨으로써 농업노동자들 역시 저임금노동자로 전락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러브리스 일행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었다.

이들의 정당한 권리주장에 뜻을 같이한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법을 정상화시켜 적용한 당시의 정부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하게 된다. 러브리스 일행과 그들의 가족들을 도우려는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전국적으로는 연인원 약 8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있었다. 이 중에서도 단일 규모로 최대였던 집회는 런던에서 열렸던 것이었다(약 5만 명). 그리고 로버트 오웬 등과 같은 이들도 이들의 사면을 위해 앞장섰고, 이 결과 이들은 1838년과 1839년에 걸쳐 모두 귀향하게 된다. 지금도 영국에서는 이들을 '톨퍼들의 순교자'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시의 민중들은 매우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된다. 스스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들로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이러한 경험들은 이후 의회개혁운동과 함께 차티스트 운동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최초의 노동조합들이 생겨났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고 커 나가는 협동조합운동도 노동운동과 함께 시작되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톨퍼들의 순교자들의 첫걸음은 미미한 듯 보였으나, 이들의 목소리와 항의는 이후의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를 발견하게 하였고 꿈꾸게 만들었던 셈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한번은 희극으로 또 한번은 비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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