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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세상읽기]경주, 두 개의 '참 좋은 시절'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2014년 05월 21일 수요일

천년 고도 경주를 무대로 한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KBS2 <참 좋은 시절>.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특정한 공간은 그저 촬영지로서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가 있든 없든 그 공간의 구체적인 현실과 어우러져 나름의 고유한 상징과 메시지를 창출하기 마련이다.

드라마 내용은 다소 빤하다. 사연 많은 인물들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틀 안에 하나가 되어가는 스토리를 담았다. <참 좋은 시절>만의 독특한 무드는 경주라는 공간적·시간적 배경에서 나온다. 삶의 소중한 시간들이 경주 곳곳을 스쳐간다. 등장인물들은 1000년도 넘은 역사 유적들 앞에서 때로는 다투고 아파하고 때로는 위로하고 사랑하며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견뎌나간다.

경주의 무덤(고분)은 드라마를 풍성하게 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과 다름없다. 단지 공간적 의미를 넘어, 1000년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듯한 뭔가 신비롭고 영적이기까지 한 느낌. 만일 이 모든 삶의 순간을, 그들이 함께 지켜봐주고 함께 어루만져주며 나아가 관장 내지 주재하고 있는 것이라면…. 무덤은 본디 죽은 자를 위한 안식처이지만 산 자들의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격려하는 공간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죽음 앞에 겸손해야 하는 삶. 앞서 떠난 이들의 응원.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끝. 사멸과 생성. 그것들의 영원한 순환, 공존, 그리고 교감….

   
  신라시대 무덤군인 경주 대릉원을 배경으로 한 <참 좋은 시절>의 한 장면. 맨 왼쪽부터 주인공 차혜원, 강동석, 강동희의 어린 시절 모습. /캡처  

하지만 이는 경주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참 좋은 시절'의 한 단면일 뿐이다. 낭만적 감상에만 머문다면 근사한 문화유산 뒤에 가려진 그곳 시민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경주 시민들은 역사 유적의 보존을 위해 제정된 문화재보호법 탓에 지난 50년간 지역 발전이 정체돼 엄청난 재산상·생활상 피해를 입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서울·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6기의 핵발전소와 그 폐기물 처리장인 방폐장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경주 시민들은 그러나 무려 89.5%의 찬성률(2005년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로 그 위험한 시설들을 환영했다. '우리도 잘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 하나로, 말 그대로 혹시나 도래할지 모르는 '참 좋은 시절'을 위해.

지방선거가 한창이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민들을 향해 으레 쏟아지는 말들이 있다. 특정 정당의 노예, 먹고사는 문제만 집착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 보수꼴통 노인네들…. 주로 서울·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먹고살 만하고 좀 배웠다는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미안하지만 당신들에겐 그런 말을 뱉을 자격이 없다. 핵폐기물과 생존을 맞바꾼 참담한 선택에 고뇌하지 않고, 오직 지역을 여가와 힐링을 위한 휴식처쯤으로만 여기며, 밀양 송전탑과 노후 원전을 나와는 별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치부하는 한 말이다. 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에 핵발전소를 짓지 않느냐는, 지역민들의 지극히 정당한 의문과 절규에 침묵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엔 물론 핵발전소도 방폐장도, 지역민들의 절망적인 삶도 등장하지 않는다. 경주 시민들은 이 드라마가 성공해 지역경제에 뭔가 도움이 되기만을 또다시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잊지 마시라. 당신의 '좋은 시절'과 누군가의 '좋은 시절'은 그 의미가 다를 수도 있음을. 당신의 좋은 시절이 누군가의 좋은 시절을 사정없이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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