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틀에 갇혀 산다. 어느 보고서에 보면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과도한 사회적 비교와 소위 틀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외감이라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가장 큰 틀은 나이의 틀이다. 10대, 20대, 30대…. 우리는 각각의 나이에 맞는 성공의 전형적인 기준을 가지고 산다.

외모에서도 이 틀은 존재한다. 한국인에게 이상적인 남성의 키를 물으면 180cm 이상, 여성의 몸무게는 45~50kg이라고 대답한단다.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일까 궁금해 학생들에게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의 삶에 불만족을 느끼고 행복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시각 장애인 독서 수업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이런 틀에 갇힌 행복이 가짜임을 마음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할머니는 장래가 촉망되던 똑똑한 아들의 작은 실수로 인해 닥친 불행으로 충격을 받아 갑작스럽게 시각 이상을 느꼈다 한다.

처음엔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증세는 더욱 심해졌고 뒤늦게 찾은 병원에서 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는 불가능하고 2년 이내에 시각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말이 청천벽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어 보이는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일절 외출도 삼간 채 성경 필사와 찬송 외우기에 매달렸다. 이제 시력은 거의 잃었지만 할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성경과 찬송은 모두 머릿속에 있다 하시며 여전히 마음의 눈으로 잘 보고 행복해하신다.

백내장 수술 후 치료를 잘못 받아 시각을 완전히 잃게 된 한 수강생의 이야기도 마음에 남는다.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가족에 대한 생계 걱정이었는데 정작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니 눈으로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 마음으로 보이더라는 이야기는 깊다.

가질 때 행복하다 여겼는데 오히려 잃고 나서 더 행복하더라는 이야기는 행복의 역설이다. 아니 이것은 행복의 정설이며, 실은 우리의 오해가 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행복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높은 산에 오르고 깊은 바다를 헤엄치며 근사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리고 모든 것을 멋지게 해낸 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떠나고 없었다. 남편이 곁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본질을 외면한 채 사회적 성공만을 위해 열심히 바다를 헤엄치고 미친 듯이 산을 오르고 있는 이 남편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행복은 그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이루면 행복해지리라는 헛된 생각만을 품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세월호 사태 직후 '심술궂은 딸 그대로, 말 안 듣는 아들 그 모습대로 돌아만 와 달라'는 기도문을 읽고 가슴을 쳤던 적이 있다. 자식이란 성적이 아니라, 좋은 성품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무엇을 이루어서, 내 삶에서 멋진 것을 성취해서가 아니라 삶의 존재 자체가 행복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고 온 몸으로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지.

   

아침의 공기가 신선하다. 행복하다. 지금부터 더 많은 행복을 선택하며 살기로 다짐해 본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