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한국 장미과 식물

겨울철새들이 떠난 우포늪의 5월은 가장자리에 늘어선 버드나무들이 하늘과 땅뿐만 아니라 물까지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초록동심의 세상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늪 따라 버드나무 순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꽃향에 취한 벌꿀들이 '휭휭' 소리 내는 길을 걸으면 행복해집니다. 버드나무와 마주한 산 숲 아래에 짙은 초록 잎으로 찔레향 뽐내는 곳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하늘을 날아가는 오리들을 바라보면서 꽃향에 취해봅니다.

소리꾼 장사익은 도시 아파트에 널브러져 피어 있는 장미 넝쿨에서 꽃향이 나는 줄 알고 코를 갖다대었지만, 꽃향이 나지 않아 좌우로 두리번거렸더니 구석진 곳에서 찔레꽃을 발견하고 그 향을 맡으며 울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라고 노래합니다.

찔레꽃. /이인식

살아가면서 우리 산천에 흐드러지도록 피는 찔레꽃과 하얀 찔레꽃보다는 늦게 피어나지만 땅이나 바위를 타고 오르며 피어나는 땅찔레(돌가시나무), 해당화 등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장미꽃 들입니다. 꽃송이가 크고 빛깔이 붉은 서양 장미에 익숙해져서 꽃무리로 이어진 꽃과 짙은 향을 다 가진 제 땅의 보물은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현실도 이제는 극복해야 합니다.

우포늪을 비롯한 낙동강가 습지와 물가 낮은 바위를 따라 담쟁이처럼 기어오르며 하얀 꽃을 앙증맞게 피우는 땅찔레도 자세히 보면 재미납니다. 돌가시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와 해안의 산기슭 양지에서 자라면서 낮은 포복을 하듯이 슬금슬금 기면서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의 돌이나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자랍니다. 마치 걸음마 하기 전 아기들이 엉금엉금 기며 엄마 찾아 집안을 헤집고 다니듯이, 비스듬한 바위벽에 자리 잡고 삽니다. 그 향도 대단하지요.

지난 2001년부터 마산중학교 아이들과 동해안에서 사라져가는 해당화를 구하여 봉암 갯벌에 심었습니다. 한국 장미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쯤 봉암갯벌에는 해당화 꽃향과 도요물떼새들의 울음소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겠지요. 해당화는 우리나라 각지 바닷가 모래땅과 산기슭에서 나는 낙엽관목으로 햇볕을 많이 받는 곳에서 자랍니다. 이렇듯 해당화는 모래톱이 발달한 해안을 따라 5월이 되면 서양 장미와는 달리 붉은 꽃 짙은 향을 풍기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 생태보물자원입니다. 우리 장미과의 꽃들은 때깔도 곱지만, 무엇보다 꽃향이 뛰어나지요. 이렇게 보호되어야 하고, 귀한 약재로, 때로는 원예자원으로 연구되고 실용화되어야 잃어버린 우리의 생태경관과 자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향 떠난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라고 우수에 젖어 노래만 부를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 찾아 찔레꽃 향기와 해당화 붉은 꽃 향기를 맡으며, 새 삶을 살아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덧붙여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꽃다운 생명들에게도 우리 장미과 식물들로 원혼을 달래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인식(우포늪따오기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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