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극단 현장 리뷰

움직인다.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 16일 오후 7시 30분 극단 현장이 운영하는 현장아트홀(진주시 동성동) 앞에는 연극 <스트립티즈>를 보려는 관객 50여 명이 공연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 16일 발생한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참사 이후 '강요된 침묵'은 문화예술계, 특히 공연계로 쏠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명령에 가까운 가둠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극으로 말을 걸다 = "슬픔에 빠진 나라. 대부분의 축제나 공연이 취소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이 작품을 올리는 이유는 공연을 하는 것이 연극하는 사람들의 숙명이고 생존이기 때문이다.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지 않고 지금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극단 현장의 사무국장이자 <스트립티즈> 연출을 맡은 고능석 씨는 "세월호 사고 때문에 극이 명확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초 시작된 공연 연습 중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공연을 취소하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우리는 공연한다"는 대답이 빈번해질수록, 연출 의도가 분명해졌다.

고능석 연출가는 "공연을 한다는 행위는 우선 자기 미안함을 씻는 것이며, 이런 와중에도 공연을 한다는 의미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손'이 씌운 검은 통을 수갑 채운 나머지 손으로 벗으려는 생각도 없이 서류 가방만 찾고 있는 주인공 '가'와 '나'. /극단 현장

블랙코미디 <스트립티즈>의 주인공 두 사람 '가'와 '나'. 이름도 없는 이들은 개성이 없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소월'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인물과 달리, 행상에게 '행상'이라고 사회적 위치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과 비슷하다. '가'와 '나'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표하는 두 유형에 속하는 인물로, 각각 숫자 1과 2를 붙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가상의 공간에 갇힌 '가'와 '나'는 논쟁을 벌이느라 탈출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부조리극이 내보이는 공간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관객마다 가상의 공간이 어디인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배 모양'을 닮았다고 느끼거나 눈치 챌 수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배라는 해설도, 대사도 없다.

고능석 연출가는 "주인공들의 지껄임. 두 사람이 경쟁하듯 내뱉는 수사는 마치 (세월호) 사고 발생 후 보이는 정부와 언론의 대응처럼 떠들썩하기만 하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시키는 대로 옷을 벗는 두 사람 = 직업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두 남자 '가 '와 '나'가 낯선 공간에 떨어진다. '가'는 말은 많지만 의자에서 꼼짝하지 않으려는 자이다. '나'는 겁은 나지만 계속해서 행동하려는 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다. 이들은 걸어오다 떨어졌는지, 뛰어오다 떨어졌는지가 중요하다.

인물 '가'는 끊임없이 나가지 않는 이유를 증명하려 애쓴다. 나중에는 옆에 있던 '나'에게 "나가라는 협박을 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가' 자신의 행동은 '나'로 인한 협박이었음을 근거로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탈출을 시도하는 인물 '나' 역시 결국 나가지 않는다. '나' 자신이 행동하려는 이유를 '가'에게 거창한 논리로 설명하느라 정작 행동하지 않는다.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관객들. /박정연 기자

갇힌 공간의 구멍에서 '손'이 등장한다. '가'보다 강한 '나'의 적극성은 손이 시키는 대로 먼저 나서서 옷을 벗기에 바쁘다. 윗도리를 벗고, 와이셔츠를 달라는 대로 주고, 바지까지 벗어주는 두 사람에게 '손'은 검은색 통을 머리에 뒤집어씌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서류 가방을 찾느라 기어다닌다. 한 손씩 연결해 채워진 수갑의 나머지 한 손으로 자신들의 눈을 가린 검은 통을 벗어던질 생각조차 '가 '와 '나'에게는 없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푸는 부조리극 = 50분 짜리 다소 짧은 극 <스트립티즈>가 끝났다. 주인공 가(배우 송광일)와 주인공 나(배우 이재선)가 채우는 2인극 무대이니만큼 러닝타임이 다른 정통연극보다 짧다. 짧은 만큼 강렬함도 크다. 팬티와 양말, 넥타이만 남긴 채 손에게 모든 걸 벗어 준 두 사람의 열연으로 관객들도 숨을 죽인 채 극에 몰입했다.

무대가 끝나고 고능석 연출가와 두 배우는 관객들 앞에 다시 섰다. 먼저 "장소가 어디냐"는 관객의 질문에 고 연출가는 "어디인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고능석 연출가는 1961년 공산주의 폴란드 시절 극작가 슬라보미르 므로체크가 쓴 원작에도 공간에 대한 설명은 없다며 자연스레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했다. 무대 설치가 배 모양을 닮았음을 관객들은 대부분 설명을 듣고 알았다.

이번에는 고능석 연출가가 관객들에게 "주인공의 직업이 무엇일 것 같냐"고 물었다. 여기 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교수", "정치인", "샐러리맨"이라는 대답이 쏟아졌다.

<스트립티즈>가 전하는 '불편함' 앞에 침몰하는 세월호는 곳곳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시작되는 자리였다.

극단 현장 <스트립티즈> 연출가 고능석.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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