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후 '일자리 보장' 유혹 뿌리치고 정부 꼭두각시 공영방송 치부 폭로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지난 9일 사퇴했다. 내가 놀란 것은 그가 자신의 사퇴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었다.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

전형적인 물귀신 수법으로 보였다. 자기 혼자 사퇴하는 건 억울하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KBS 상황을 보면, 사장이 사사건건 그렇게 해왔으리라는 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상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고, 그런 사장은 대통령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는 신문이나 방송사도 근본적으로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장은 경영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회사에 손실이 올 수 있는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6200여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도 그렇다. 정부와 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대학, 기업 등이 주요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종종 그들로부터 부탁이나 항의 전화를 받는다. 광고와 사업을 지휘하는 사장은 훨씬 더 많은 전화를 받을 것이다. 사장은 그런 내용을 편집국장에게 전달한다. 물론 가끔은 사장의 의견을 곁들일 때도 있다. 이때 광고주의 항의나 부탁이 과연 합리적인지, 부당한지를 판단하는 건 오로지 편집국장의 몫이다.

부당한 요청이라면 거절하거나 묵살하면 되고,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면 보도에 반영하면 될 일이다. 이런 판단을 하라고 편집국장(방송의 경우 보도국장)이 있는 것이다. 그 판단이 사장과 다르다면 사장을 설득하는 것, 반대로 기자들의 입장이 다를 때 그걸 납득시키는 것도 국장의 일이다. 사장과 기자, 그리고 자신의 소신 사이에 합일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스스로 역량 부족을 인정하고 자리를 내놓든지 아니면 맞서든지 하면 된다.

그래서 김시곤 국장이 여론에 떠밀려 사퇴하면서 사장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비겁하고 비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새로운 폭로가 나왔다. 9일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던 반박 기자회견이 사퇴 기자회견으로 급히 바뀐 내막은 이랬다.

"낮 12시 25분 사장 비서로부터 사장이 면담하겠다는 연락 와서 6층에 올라갔다. 사장의 전언은 "주말에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어 위기국면이다. 기자회견 잘 해 주길 바란다" 이야기 들었다. 정확히 1시간 뒤인 오후 1시 25분, 즉 기자회견 35분 남은 시각에 휴대전화로 사장 휴대전화 왔다. 올라오라고 했다. 사장은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면서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 말을 어디에 가서 할 수 있겠나. 저 자신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사람이 과연 언론기관의 수장이고, 이곳이 과연 언론기관 인가 하는 자괴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했다."

   

놀라운 일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사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물러날 일이다. '3개월 후 일자리'에 매달리지 않고 이렇게나마 치부를 폭로해준 김시곤 국장이 되레 고맙다. 이참에 권력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공영방송을 확실히 바로잡는데 불쏘시개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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