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나 행정기관 등에서 일부 시행하고 있는 ‘여성할당제’ 도입이 노동계서도 추진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부터 여성국 주관으로 단위노조 대표자 등 간부들을 대상으로 대의원대회 등 의사결정기구에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는 데 대한 찬반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정리·분석한 결과를 이달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전체 노조원 58만명 가운데 13만여명이 여성으로 한국노총 19%보다 높은 23%를 차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중요 의결기구인 대의원과 중앙위원은 10%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30% 여성할당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여성 비율이 60%에 이르는 전교조의 경우 대의원의 6.8%와 중앙위원의 7.7%만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이 5.2%를 차지하는 금속산업연맹도 대의원의 3.3%, 중앙위원의 2.3%만이 여성일 뿐이다.



또 의료보건노조는 여성 대의원과 중앙위원이 각각 47.7%와 45.6%로 비교적 높은 비율이지만 여성 노조원 구성비 74.2%와 견주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며, 여성노조원이 전체의 32.5%인 대학노조도 여성 대의원과 중앙위원은 9%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종 논의와 사업 집행이 대규모 사업장·남성·정규직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어, ‘70%가 비정규직이고 또 그중 70%가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500만 여성노동자’를 위한 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금속산업연맹 경남본부 류시현(여) 총무부장은 “△직장내 성희롱 △아줌마 노동자 우선 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출산·육아에 따른 모성보호 등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는 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 등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들이 거의 배제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경남본부의 경우 1400여 명의 여성노동자가 소속돼 있으나 여성부도 없는 상황에서 6명의 상근 부장 가운데 총무부장이 여성사업을 겸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2004년을 목표로 민주노총의 30% 여성할당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서도 뿌리깊은 남성 중심 문화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코리아타코마노조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미선(여·27)씨는 최근 나온 공동노보 ‘들불’ 17호에 ‘여성친화적 집회문화를 만듭시다’라는 글을 싣고 노동현장의 남성중심주의를 따끔하게 꼬집었다.



김씨는 이 글에서 “집회장의 걸개그림은 대부분 근육이 불거진 남성노동자가 앞장서고 여성노동자는 뒤에서 분개하는 것이고” “구호도 마치 욕설이나 하듯 거칠며”, “차디찬 땅바닥에 오랫동안 앉혀놓는 등 여성의 생리구조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일률적인 손동작도 획일적인 군대문화를 떠올리게 하며”, “술을 억지로 권하면서 늦게까지 함께하도록 강요하는 뒤풀이 문화도 남성중심주의의 소산”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글에서는 집회문화만 거론했지만 실제로 남성노동자들의 언행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며 “조그만 것부터 바꾸려고 노력하면 차차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일단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남성노동자는 “김씨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남자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것도 여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반성했다”면서 “미조직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비정규직인 점에 비춰 남성중심 사업풍토를 지양하고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는 것이 조직 확대·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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