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89) 5월의 우포늪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2월에서 4월까지 일반인들의 우포늪 방문이 통제되었다가 드디어 5월 1일 방문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우포늪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보시는 귀중한 방문이 되시기 바랍니다.

◇느릅나무와 이순신 = 우포늪생태공원에서 우포늪 방향으로 가다보면 느릅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느릅나무가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 고름을 낫게 해준 나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과거 시험을 치는 도중 말에서 떨어졌을 때 버드나무 껍질을 동여매고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급제는 했지만 나중에 고름이 생겨 고생할 때 낫게 해 준 나무가 바로 느릅나무라 하며 그래서 일명 '이순신장군 나무'라 부르기도 합니다.

관심 없이 스치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이 느릅나무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먹을거리가 매우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하게 사용된 나무이기도 합니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따르면 평강공주가 온달의 오두막집을 찾아 갔을 때 온달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너무도 배가 고파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갔던 것입니다. 식용으로 말씀입니다.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서 마른 뒤 그 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섞어 느릅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답니다. 이 나무는 독성이 없어 뿌리에서부터 잎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연한 잎은 삶아서 먹거나 콩가루 등에 비벼 떡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뿌리의 껍질은 유근피라 하여 한방에서 각종 염증 치료에 중요한 약재로 사용되는 아주 쓸모가 많은 나무입니다. 이순신 장군께도 도움을 준 뿌리입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는 나무이죠. 북유럽 신화에서 최고의 신 오단은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만들고 이 느릅나무로는 여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공원이나 정원수 그리고 가로수로도 심는 우리 인간과 친숙한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느릅나무는 엄청난 이야기(storytelling)를 간직한 귀중한 나무입니다.

느릅나무가 연한 잎을 늦게나마 피웠습니다. 우포늪에서 오는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느릅나무를 주제로 한 시들이 생각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선각자 중 한 분이신 다산 정약용 선생은 '느릅나무 숲을 거닐며'라는 시를 썼습니다. "느릅나무 잎사귀 토한 듯 무성한데/ 우거진 녹음 아래 둘러앉은 촌사람들/… 나라 다스리는 방책을 알려거든/ 마땅히 농부들에게 물어야 할 일."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면 백성을, 현장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셈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아 하루같이 침울한 오늘날 근본 방책을 세우는 데도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2~4월 일반인의 우포늪 방문이 통제되었다가 지난 1일 해제됐다. 사진은 초록으로 물든 5월의 우포늪 모습. /노용호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성지 = 우포늪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우포늪은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는 성지(聖地) 같은 존재입니다. 우포늪의 하나인 목포에 위치한 장재마을 앞에서 사진을 찍던 정봉채 작가를 만나니 하루에 수 천 장을 찍어야 몇 장의 마음에 드는 풍경 사진이 나온다고 합니다. 물 위의 새들을 찍는가 하고 보니 뭔가 특별한 풍경이 없었습니다. 의아해하며 사진이 찍히는 곳을 바라보니 작은 날파리들이 무리 지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찍었는지 긍금해 물어보니 수면 위를 날고 있던 날파리들을 찍었다고 합니다. 우포늪을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작고 작은 날파리 무리를 찍었답니다.

예술이 우리 인간들의 삶을 우아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예술품들이 이러한 관찰과 남들과 차별화되는 창의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수동적 보기가 아닌 자신만의 적극적인 보기(active watching)가 어떠한 일을 하든지 필요함을 느낍니다. 우포늪에서 날파리들이 나는 풍경을 그렇게 수많이 찍던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탄을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찍기 위해 따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같은 사진은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일들의 시작이 모방에서 출발한다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작품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문화강국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만 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리 개개인이 노력해서 새로운 것 차별화된 것을 만듦에서 시작됨을 느낍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탓을 할 필요가 없겠죠? 나 자신은 어떤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얼마 전 다른 지역에 생태해설사로 있다가 우포늪에서 해설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해설사 한 사람이 우포늪에서 오랫동안 해설사로 일해 온 분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최근에 우포늪에 약을 많이 뿌렸나요?" 그 말을 들은 다른 해설사는 "아뇨. 우포늪에는 약을 치지 않죠"라고 답합니다. 자연에 관심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혹시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살균을 많이 하지는 않았나요? 지금쯤 버드나무 잎을 먹고사는 무당벌레의 애벌레들이 엄청 많아야 되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아 그래요! 그렇겠군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살균을 하기는 했어요. 애벌레들이 없으면 새들 먹이가 엄청 줄어들 수도 있는데…." 두 사람은 마치 손을 맞잡은 듯이 함께 걱정을 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나하여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가시연꽃 = 우포늪의 대표적 수생식물인 가시연꽃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콩알만한 크기의 씨앗에서 말굽 모양의 잎이 되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작은 씨앗에서 5월 초순에는 1cm 정도의 잎이 나오고 8월이 되면 대부분 1m가량으로 커지고 보라색을 포함한 꽃이 피어 우포늪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의 감탄을 받습니니다. 항상 마지막엔 큰 일들도 시작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시작됨을 가시연꽃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항상 순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비와 바람, 홍수 그리고 태풍이 끼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라야 가시연꽃은 아름다운 꽃과 웅장하게 큰 잎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끝>

/노용호(창녕군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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