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진주 이반성 경남진산학생교육원 사감 김정순 씨

"많이 시끄럽죠. 지금이 하루 일과 중 가장 바쁜 시간이에요. 밤 10시부터 취침시간이라 아이들이 분주하죠. 한 20여 분 지나면 조용해질 거예요. 오늘은 애들이 피곤해서 일찍 잘 거예요."

김정순(48) 씨는 진주 이반성 경남진산학생교육원 소속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다.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오전 9시까지 기숙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기숙생활을 관리감독 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업무규정에 사감이란 '기숙사생을 감시 관리 감독한다'라고 나와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감시란 단어는 마음속에서 지웠어요. 사감과 기숙사생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하는데 서로 소통해야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죠. 외부인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 하려고 설치한 CCTV가 우리 기숙사에서 유일하게 감시업무를 하고 있죠."

김 씨가 밤을 지새우며 기숙사를 지키는 사감업무를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한 가족의 맏며느리로서, 또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 노릇을 이어가면서도 야간근무인 사감을 선택한 것은 그의 또 하나의 꿈을 위해서다.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그해 겨울 결혼을 했어요. 교사직 추천도 받았었는데 한 남자 아내의 길을 택한 거죠. 그리고 평범하게 두 아이 기르며 생활하는데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영화처럼 찾아오데요. 공과금 내러 은행에 갔다가 결국 사감까지 됐네요. 하하(웃음)."

경남꿈키움학교 기숙사 사감실에서 기숙사생과 상담하고 있는 김정순 씨. /박민국 기자

은행에서 만난 대학교 동창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친구는 묵혀두었던 전공을 살려보라며 동창이 근무하던 부산 ○○고등학교의 국어과목 시간 강사 자리를 김 씨에게 권유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97년 3월 1일 경북 여경 1기 출신인 시어머니의 응원을 등에 업고 사범대 졸업 10년 만에 처음으로 교단에 섰다.

"그때 딱 1년만 학교에 나간다고 한 것이 지금까지 왔어요. 시어머니의 배려가 없었으면 지금까지는 못 왔겠죠. 가정과 직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온 힘을 다했어요. 이제 두 아이도 군대에 가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네요."

김 씨의 강사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시간 강사로 첫 발을 내디딘 그의 직업관은 성실과 노력이었다. 졸업 10년 만에 강단에 서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시간 강사를 하며 교육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의 교습법은 뒤늦게 빛을 발휘했다. 부산의 유명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논술지도 강의요청이 들어왔다. 그가 맡았던 논술과목이 신청 3시간 만에 정원을 마감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고 귀띔한다.

"그 당시 아이들도 가르쳤지만 저도 많은 것을 배웠어요. 가르치는 사람도 늘 배워야 해요.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강사의 길이 힘들죠."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의 소문은 그를 논술전문 프리랜서로 만들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의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시간 강사로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를 제의한 것이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기회였다. 외부 강의를 중단하고 본격적인 교직의 길을 걸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하나하나 서로 모르는 것을 함께 깨우치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죠. 그런데 인생이 탄탄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저에게 늘 버팀목 역할을 하셨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저의 몸에도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선생님은 늘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목에 탈이 났어요."

가수·교사 등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흔히 발생한다는 성대 결절이었다. 우연한 만남과 기회로 시작한 가르치는 일을 내려놓는 원인이 된 것이다. '문자언어'에서 '영상언어'로 급격히 바뀌는 아이들의 요구도 그를 힘들게 했다. 김 씨는 2012년 2월 28일 기간제교사 계약기간을 채우고 15년 만에 전업주부로 돌아왔다.

"딱 두 달을 집에만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때마침 부산 ○○고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모집 중이었어요. 목을 많이 쓰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했죠. 면접 때 교장 선생님이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교직 생활을 하다가 야간에 근무하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그리고 사감 이직률이 심해서 제가 근무하면 8번째 여사감이라고 가능하면 오래 근무해달라는 부탁도 하셨죠."

그가 교직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사감업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기숙사생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고 그들과 소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기숙사 생활 만족도 조사라는 설문도 만들어 그 자신에 대한 평가를 기숙사생들에게 받았다. 김 씨가 틈틈이 알려주던 논술지도는 고교 3학년 기숙사생들에게는 무료 과외 보너스였다. 계약기간이 다가오자 학교는 근무연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 씨는 새로운 꿈이 생겨 이 요청을 거절했다.

"사감이란 직업을 얻고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어요. 기숙사생을 감시·감독 관리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사감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고 싶어요. 그래서 학교폭력상담사 1급 자격증에 도전 중이에요. 이직률이 높은 이 분야에서 전문사감이 되자고 결심했죠."

그는 새 꿈을 이루려고 다양한 경험을 선택했다. 올해 새로 생긴 폭력 예방을 위한 경남진산학생교육원 기숙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또 이곳에서는 공립기숙형 대안학교인 경남꿈키움학교와 함께 순환근무를 해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여기는 중학교라 고등학교 기숙사와는 많이 달라요. 기숙생들이 이제 1학년이라 하루에도 똑같은 말을 20번 이상 해야 해요. 신경도 많이 쓰이고요. 그러나 흐뭇한 보람이 있어요. 아이들이 집에 가는 날 '저는 기숙사가 더 좋아요'라는 말, 돌아오는 날 '샘 보고 싶었어요'라고 하는 말이 힘을 나게 하죠."

그가 풀어놓은 교직 변천사를 듣는 동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두 시간마다 진행하는 순찰을 준비하며 김정순 사감은 말했다.

"<B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은 잊으세요. 이제 김 사감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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