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맛 읽기] 잡다한 메뉴 VS 단일 메뉴 식당 체험기

두 식당이 있다. '행복식당'과 '행복순두부'. 당신은 어느 쪽에 들어가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가?

행복식당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육개장, 뚝배기불고기, 돌솥비빔밥 등 백화점식 메뉴를 자랑(?)한다.

반면 순두부전문점인 행복순두부는 시장의 옷가게, 신발가게처럼 명료하다. 내기를 걸어도 좋겠다. 행복식당에서 먹는 순두부찌개보다 행복순두부에서 맛보는 순두부찌개가 맛이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식당에도 정체성이 있다

손님상에 내놓는 음식이 무려 136가지인 식당도 있다. 상호가 메뉴를 배반하는 김밥천국이 대표적이다.

수많은 김밥천국 중 어느 한 체인점에 빼곡히 적힌 차림표를 뜯어보니 찌개류 24가지, 김밥류 23가지, 덮밥&볶음밥 16가지, 면류Ⅰ15가지, 면류Ⅱ 13가지, 분식류 11가지, 비빔밥&돈가스 9가지, 일식류 9가지, 만두류 8가지, 죽류 8가지 순이다. 김밥집에서 일식요리에 죽까지 판다.

물론 김밥 정도를 제외하고 식당에서 직접 만드는 음식은 거의 없다. 그저 데우기만 하면 되는 냉동·반조리·인스턴트 식품 천국이다.

주방 한 곳에서 날치알 김밥, 임실치즈돈가스, 순두부라면, 소내장탕, 돈뼈해장국, 가츠동, 닭죽이 조리돼 나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한때 30미터 거리에 하나씩, 또는 김밥천국과 김밥나라가 마주 보며 골목을 장악한 적이 있다.

이에 도전장을 내밀기라도 하듯 최근에는 김밥의 재료 질을 높이고, 메뉴를 확 줄인 고봉민 김밥이 자리를 잡았다. 물론 이름은 김밥집이지만 메뉴판에 수제돈가스·손수제비·순두부찌개 등은 빠지지 않는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메뉴 가짓수도 문제지만, 도무지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메뉴의 조합으로 손님 입맛을 잡겠다는 식당도 있다.

메뉴가 많을수록 개개 음식에 쏟는 정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어느 멸치쌈밥 전문식당 메뉴판에는 생멸치회, 멸치쌈밥, 쌈밥정식 외에도 생삼겹살, 한방갈비탕, 매운탕, 냉면 등이 적혀 있다. 사이드 메뉴로 매운탕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멸치회를 먹으러 간 식당에서 옆 손님이 삼겹살을 굽는다면 회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미각이 살아나기도 전에 삼겹살 구이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켜 먹는 즐거움을 앗아갈 수밖에 없다.

주방이나 홀 인원이 보강되지 않는 한 음식에 쏟는 정성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같은 계통의 음식을 구이, 무침, 탕 등으로 다양하게 내놓는 건 그나마 수월할 수 있지만 생선 만졌다 고기를 만졌다, 생선찌개를 끓이다 고깃국을 만들다 하는 건 쉽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결국 하나하나 장을 봐 음식을 직접 만들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냉동·반조리·인스턴트 식품 등에 눈길이 더 가기 마련이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물론 식당들은 항변한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자주 다니는 골목에 막국수집이 생겼다. 가게에 들어가니 족발도 팔고,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거기다 계절 메뉴로 콩나물국밥과 해물짬뽕, 자장면 등 많은 음식을 갖춰놓았다.

저녁 장사, 즉 술 손님을 끌고자 족발을 더했을 것이고, 아이 손님을 위해 돈가스를 추가했을 것이며, 해장하는 사람이 찾도록 콩나물국밥까지 넣었을 것이다.

홀은 넓고 깨끗했지만 손님이 없다. 자신 있는 메뉴를 물으니 사장은 막국수라고 말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음식 종류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하니, "다양한 손님을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치전골과 동태찌개, 뚝배기불고기 등 다양한 메뉴를 파는 창원시 중앙동의 한 식당 주인은 "이것저것 해가면서 손님들 반응을 살피며 장사를 하다 보니 메뉴가 늘어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뉴를 추가해서 고객층을 넓히겠다는 생각은 독이나 다름없다. 1999년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백숙전문점 함양옻닭을 낸 김순남 사장은 "손님들 때문에라도 다른 걸 못한다. 옻닭집에 옻닭 먹으러 오지 뭘 찾겠나. 테이블 10개가 내가 맛있게 한 상 차려낼 수 있는 적정선인데, 다른 메뉴까지 들어오면 정신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식당 주인이든 주방장이든 최대한 정성을 쏟을 수 있는 범위여야 그만큼 음식 맛도 좋아지고 손님도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단일 메뉴에 답이 있다

기자는 지난해 10월 맛집 취재를 시작한 이래로 '단일 메뉴' 식당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까지 소개한 맛집은 20곳에 이르는데 예의 단일 메뉴로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이 대부분이다.

앞서 함양옻닭과 함께 국시방(마산회원구 내서읍)과 하동돼지국밥(마산회원구 산호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가게 이름 자체에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국수 파는 국시방, 옻닭 먹는 함양옻닭, 돼지국밥 내놓은 함양돼지국밥. 굳이 전문점이라고 써놓지 않아도 무엇을 먹을 수 있는 집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메뉴도 예의 단출하고 일관성이 있다. 물국시·비빔국시·비빔밥(국시방), 옻닭·옻유황오리·백숙(함양옻닭), 돼지국밥·수육·주물럭(하동돼지국밥).

3개 식당 모두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 국시방의 경우는 2005년부터 3년 동안 공백기가 있었는데 돌아보면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2000년 처음 문을 열 때는 우동, 김밥, 유부초밥까지 포함해 메뉴가 6가지였지만, 2008년 재개업 했을 때는 메뉴를 3가지로 줄였다.

국시방 이현규 사장은 "김밥을 단체 주문받고는, 멋도 모르고 좋다고 주방을 보는 아내와 홀을 보는 나와 둘이서 생고생을 했다. 나중에는 딸까지 불러 밤을 새워 김밥을 말았다. 한번 딱 그러고는 따로 주문을 받지 않는다. 식당에 와서 먹고 갈 수 있도록만 한다"고 말했다.

물론 단일 메뉴 자체가 진리일 수는 없다. 하지만 재료 관리도 쉽고, 조리도 효율적이고, 인건비 등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집중도도 높아지고. 맛집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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