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12) 전남 담양 소쇄원

소쇄원의 빼어난 경치

한데 어울려 소쇄정 이루었네.

눈을 쳐들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귀 기울이면 구슬 굴리는 물소리 들려라.

-제1영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해

(시 '소쇄원 48영' 중)

사금파리로 맨살을 할퀸 듯 아픈 나날이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그저 침묵할 뿐이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싱그럽기만 한 녹음의 세상은 되레 눈물 날 만큼 아름답다.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瀟灑園, 남면 지곡리 123). 한국 최고의 원림이라 불리는 소쇄원까지 가는 길은 붉디 붉은 철쭉이 안내한다. 소쇄원 입구부터는 세상과는 다른 길로 안내하듯 끝 간 데 없이 뻗은 대나무숲이다.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에 잠시나마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자연 속에 몸을 숨긴다.

담양지역 봄은 4월에 가는 것이 좋다고 알려졌다. 청량한 대숲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듯하다.

소쇄원의 주인은 조선 중종 때 사람 양산보다. 자신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끝내 유배를 당하고 죽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돌아와 지은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대표 원림이자, 민간 정원이다.

광풍각

이름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양산보는 죽을 때 유언을 남겼는데 "남에게 팔지 말며, 원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마라"고 했다.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 중수하고,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그의 뜻대로 보존해온 것이다.

대나무숲을 지나면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사각의 연못에는 맑은 계곡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입구 대숲

제월당과 광풍각을 중심으로 연못과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계곡물이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담장 밑을 다리처럼 만들어 놓은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토록 명쾌하게 해결하다니.

소쇄원 공간은 1755년 판화로 만들어진 소쇄원도와 1548년 하서 김인후(조선 중기 문신)가 쓴 시 '소쇄원 48영'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소쇄원 48영'은 양산보가 소쇄원을 짓자 그의 벗이자 사돈인 김인후가 소쇄원의 빼어난 풍광을 골라 읊은 48수의 오언절구다.

시를 몰라도 상관은 없다. 무작정 소쇄원으로 들어가 위로를 받는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제월당은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소쇄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당시 주인은 이곳에서 조용히 독서를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제월당

이곳에 김인후의 '소쇄원 48영'을 비롯해 호남 문인들이 소쇄원을 중심으로 적은 한시들이 걸려 있다,

4628㎡(1400평)의 공간에 오밀조밀 자연의 모든 정취를 압축해 놓은 듯하다.

광풍각은 '비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이다. 왼편으로 대나무숲이, 오른편으로 소쇄원의 절경이 우리를 감싸 안는다.

생각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스멀스멀 올라오는 참담함을 꾹꾹 눌러 툇마루 끝에 마음을 붙이고 한참을 앉아 있다.

<인근 볼거리-세량지>

소쇄원에 들렀다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세량지(전남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의 봄도 놓칠 수 없다.

이른 새벽 저수지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신비감을 주고 이제는 짙어진 초록의 나무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와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신비감을 이루는 곳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3대 저수지로 꼽힌다.

세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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