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근현대 자료 수집가 김영철(55) 씨

2평 남짓한 그의 공간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자료들은 그것들을 관찰하는 이들을 1960년대 투표장으로, 1970년대 한일합섬 공장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자료들은 박제화된 전시물이나 죽은 활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그 에너지는 말 그대로의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많은 제 각각의 에너지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내기 위해 지난 20년 세월을 바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영철(55) 씨였다.

   
  김영철 씨가 수집한 고문서를 소개하고 있다. /임채민 기자  

김 씨는 창동예술촌(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얄개만화방'과 '꿀단지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꽤 넓은 가게에서 영업을 했으나 지금은 골목 한편 작은 가게로 옮긴 상황이었다.

무수히 많은 자료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듯했는데, 김 씨는 필요한 걸 척척 잘도 뽑아냈다. 김 씨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은 뭐라고 딱히 규정지을 수 없었다. 근현대 생활자료? 골동품?……. 어쨌든 김 씨가 모아온 물품들은 일상 생활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으나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것들이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김 씨가 소개한 자료 중에는 1978년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와 '한효학원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명의로 나온 '사원(신입생) 모집요강'이 있었다. 이 요강서에는 경남뿐 아니라 경북·전남·전북·경기·강원권에 마련된 시험 장소가 안내돼 있었다. 또한 시험과목은 1교시 국어·수학·사회, 2교시 영어·과학·가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78년에 부착된 신입사원 모집요강 한 장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한일합섬 입사(한일여고 입학) 시험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여중생들과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한국전쟁 당시 뿌려진 '다글레쓰 멕아더' 명의의 '북한군 총사령관에 고함' 삐라, 마산시에서 발행한 '토지구획정리에 대하여'라는 행정문서, 코리아타코마 건설 조감도, 고등고시 제1차 시행 요령, 1800년대에 발행된 보험증서, '지나사변 기부금 표창' 등의 자료가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서점을 운영하던 김 씨는 이런 자료들을 모으느라 '집 몇 채'는 날렸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점 이 일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딱 보면 알아요. 저게 중요한 자료인지, 아닌지.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이 있으며 무조건 달려갑니다. 때에 따라서는 1000만 원이 넘는 것들도 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수집을 해야 합니다."

김 씨 자신은 이 일을 "돈과의 싸움이고, 자료 보관을 위한 공간과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심미안과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로 보였다.

   

김 씨가 창동예술촌에 처음 입주하게 된 계기는 박물관을 꾸미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점점 계획은 미뤄지고 있었다. '잡지 박물관'이나 '만화 박물관' 식의 단편적인 자료 전시관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오더라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박물관, 근현대뿐 아니라 먼 옛날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체험관 등을 꾸미고 싶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씨의 사무실에는 없는 게 없었다. 이곳뿐 아니라 집이며 창고 등 곳곳에 수많은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이것들이 빨리 한자리에 정리되면 좋겠다"는 게 김 씨의 소원이자 목표였다.

"제가 꾸민 박물관은 포괄적인 모습이 될 것입니다. 흥미는 물론 교육 효과도 있을 수 있고요. 일단 공간이 펼쳐지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테마들로 전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하고 싶습니다."

김 씨는 수많은 자료들을 한 곳에 둘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되면 정리작업을 할 텐데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의 상태"라고도 했다.

"처음 창동 예술촌에 입주할 때는 박물관을 목표로 의욕적으로 시작했는데 더 안 좋고, 혼란스럽습니다. 관광인프라로서의 가치도 충분한데 행정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지가 쌓여가기 시작하는 자료들을 바라보며 김영철 씨가 던진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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