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의 작곡가 드보르자크는 18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 새로운 문명의 활기찬 모습에 자극받아 '신세계 교향곡(From the New World)'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저 멀리 한국 땅에도 전에 볼 수 없던 뜻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때마침 새 시대의 지휘자를 자처하고 나선 인물 또한 '신세계'를 노래하는 사람이다.

평소 인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온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연세대를 찾아 대학생 2000여 명 앞에서 강연을 했다. 신세계가 인문학적 가치를 전파하겠다며 마련한 이른바 '지식향연' 행사의 첫 순서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자리에서 이런 말들을 했다. "삼성 갤럭시S5에도 인간의 사고와 직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반영돼 있다." "스펙이 좋은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라는 등식은 깨졌다.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신세계 경영 이념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임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탐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이 물론 누군가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강단의 인문학이 있을 수 있고 거리의 인문학, 부자의 인문학도 있을 수 있다. 그럼 정용진이 주도하는 인문학은 글자 그대로 '신세계 인문학'으로 이름 붙여주면 어떨까. 자본이 앞장서 '사람의 가치'를 말하는 시대, 오직 '잘 팔리는 상품' 속에서만 인간의 사고와 직관과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는 세계. 이 기괴하고 음산한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상징하는 단어로 신세계만큼 적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지난 8일 서울 연세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설명이 필요할까. 신세계는 이마트 직원 사찰과 노조 설립 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까지 되어 있는 재벌 대기업이다. 소위 변종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통한 골목 상권 유린과 계열사 부당거래,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 등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킨 '갑'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정용진이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제품으로 찬양한 삼성 스마트폰도 다르지 않다. 차라리 하청 노동자 착취와 무노조 경영 철학의 '통찰'이 스며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날 그 순간, 세상의 잔인함에 가장 괴로웠던 이들은 혹여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강연장을 찾아간 대학생들이었을 거 같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싶다. 국내 100대 기업 대부분이 학력, 외국어 실력 등 '스펙'을 중시하는 현실(16일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발표 내용)에서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는 정용진의 말은 과연 어떤 위안이 됐을까. 인문학 운운하지만 결국 회사에 무한 복종하는 인간을 원한다는 걸 빤히 아는데 "인간을 이해하라"라는 충고가 가슴에 다가왔을까.

본의 아니게 신세계 인문학은 아주 중요한 성찰과 결단의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자본의 이미지 조작이니 진정한 인문학의 가치니 냉소 섞인 응답만으로는 부족하다. 반인간적 행태를 일삼는 재벌의 인문학 놀음에 청년들이 동참할 수밖에 없는 현실, 나 자신을 비롯한 가족·친구·동료 수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곳에 들어가 일을 하고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이 고통스러운 생존의 딜레마를 극복해내려는 노력 없이는 그 어떤 실천도 힘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부터 해야 하고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가능하기는 할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백 번 천 번을 물어도 신세계 인문학은 절대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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