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두 달 된 아이를 물에 씻겼다. 낯이 뻘겋게 몹시 울어대는 것이 겁나 대충 물만 칠하고 끝냈다. 대야 정도밖에 안 되는 물속이었지만 제 딴에는 너무도 낯설고도 무서운 공포의 공간이었던 듯싶다.

애처로운 마음에 다음 목욕 때는 절대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줘야지 하는 다짐 끝, 순간 또 그 아이들이 생각나 코가 시큰해진다.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꺼두었던 텔레비전 화면 속 '세월호' 아이들.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검은 물속에서 얼마나 무서우며 춥고 또 고통스러웠을까.

길지도 않은 우리들 삶. 따지고 보면 죽고 사는 일 말고는 중요한 일 하나 없는데, 수학여행이 대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영영 못 올 길을 가버렸나 하는 허망함의 한탄부터 하나씩 쌓인다. 제도교육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니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혹은 이번 생을 살지만 않았으면 어쩌면 피해갈 수도 있었을 그들의 고통, 그들의 운명.

목욕을 끝내고 젖을 물리니 물속에서 엄청나게 울어대던 아이는 또 엄청난 힘으로 나를 빨아 당겼다.

생명의 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물속의 그 아이들도 살고 싶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을 텐데. 출산 후 섬약해진 내 마음 벽은 또 한 움큼 눈물 속에 무너진다.

아이 귀를 닦고 또 얼굴을 만져본다. 아이의 살을 한 뼘 한 뼘 만질 때마다 아이의 몸 어디에도 어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하나 없음을 새삼 느낀다.

사랑한다, 아이야. 아이의 체온과 살결의 느낌은 바로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의 뜨거움과 부드러움이다. 사랑한다는 건, 보고 싶다는 건 이렇듯 만지고 싶고 또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함의 확인일 텐데, 어느새 다시 켠 텔레비전 속 세월호 어미들의 오열은 다시는 그리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야속함의 통곡이리라. 영정 사진만 몇 번이나 보고 또 만져대는 허한 그 손길,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

우느라 애썼던 아이는 곧 스르르 잠이 든다. 어느덧 나도 아이도 평온한 얼굴이다. 그러나 내게는 흔한 그 평화가 세월호 아이들과 어미들에겐 평생 다시는 못 올 것들. 다시 울컥 눈물이 난다. 또 언제 나 역시 부를지 모를 그들의 노래. 예전 정지용 시인이 자식을 죽음으로 잃고 지은 다음 시(유리창1)가 사태의 말하기 쉬운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상처 입은 그들의 목소리가 될 수 있을까.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라 갔구나.

/서은주(양산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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