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지자체 미술은행, 인천·전남 운영…도내 예술인들 제도 도입 긍정적

경남은 경제 규모보다 미술시장이 협소하다. 더욱이 수년째 경기 침체로 미술시장이 얼어붙었다. 현재 경남 미술계는 △상업화랑 수 감소 △젊은 예술가 지원 시스템 부재 △도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향유권 빈약 등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침체한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제도나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타 지역에서는 미술작품 구입과 대여, 전시를 통해 미술시장 활성화를 꾀하는 '미술은행'이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술은행이란 = 미술은행은 정부의 예산으로 미술품을 구입하고 공공건물에 전시하는 제도다.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미술품 대여와 전시를 통한 미술 대중화 △미술작품 감상 기회 확대 △신진 미술가에 대한 창작활동 지원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은 200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집행·관리하는 미술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 미술은행은 작품 수준을 중시해 미술작품을 구입하고, 캐나다는 대여 가능성이 높은 장식적인 작품을 위주로 구입한다.

한국은 캐나다 쪽에 가깝다. 매년 추천제와 공모제, 현장구입제를 통해 350~400여 점의 작품을 구입한다. 접수된 작품은 작품가치심사위원회, 작품가격평가위원회, 작품구입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전남문화예술재단 '남도예술은행'의 특징은 작품 대여뿐 아니라 작품 판매까지 병행한다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진도군 운림산방에서 열리는 남도예술은행 현장 경매. /전남문화예술재단

◇인천과 전남, 미술은행 운영 = 지자체 중에는 인천과 전남이 유일하게 미술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 지역 미술 활성화를 위해 2005년 '인천미술활성화기획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최선미 인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 대리는 <경남도민일보>와 통화에서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미술시장이 열악하고 지역 예술가가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재단은 인천에서 태어났거나 인천을 활동 근거지로 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작품을 구입해 공공기관, 기업체에 대여를 하고 있다"면서 "인천미술활성화기획지원에 신청하는 작가의 경쟁률을 보면 2008년에는 3.6대1, 2012년 14.1대 1로 작가들의 관심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현재 구입한 총 작품 수는 150점이다. 작품 크기는 70~100호가 많으며 평균 구입 가격은 450만 원 정도다. 대여 기간은 최소 10일부터 최대 12개월까지다.

전남문화예술재단 '남도예술은행'의 특징은 작품 대여뿐 아니라 작품 판매까지 병행한다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진도군 운림산방에서 열리는 남도예술은행 현장 경매. /전남문화예술재단

인천이 대여 사업에 치중했다면 전남은 작품 판매를 중심으로 미술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전남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남도예술은행'은 지역 예술인의 창작을 지원하고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매주 토요일 진도군 운림산방(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조성해 말년에 거처했던 곳)에서 현장 경매가 이루어진다. 현장 경매는 기존 가격보다 30~70%까지 할인된 금액으로 작품을 살 수 있어 미술 애호가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남도예술은행 홈페이지에서도 작품을 판매한다.

김광훈 전남문화예술재단 예술지원팀장은 "전남에는 상업화랑이 없는 편이라 작품을 판매하거나 살 수 있는 경로가 없다. 그래서 남도예술은행은 작품 대여보다는 판매에 치중을 하고 있다"면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재단에서 약 3300점을 구입했는데 이 중 3000점이 팔렸다. 판매 수익금은 다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 쓰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남도예술은행은 국정감사에서 우수시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남에 미술은행이 도입된다면 = 홍경한 <경향아티클> 편집장이자 미술평론가는 지역 미술은행 제도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의 창작 지원 △작품 소장 △체계 없는 지역 미술품 관리 △지역미술 역사 정리 등을 위해 효과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경남지역 예술인과 미술 관련 전문가들도 미술은행 도입에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공공기관이나 문화시설 등에 대여하는 '인천미술활성화기획지원' 사업을 한다. 사진은 부평역사(중층대합실) 내 전시 공간이 마련되기 전과 후 모습. /인천문화재단

천원식 경남전업미술가협회 회장은 "30~40대 젊은 작가의 경우 미술품을 사고팔 수 있는 활로를 개척할 수 있고, 미술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화가 강복근도 "지금까지 지자체 등의 문화예술 지원금은 미술단체나 집단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술은행은 작가 개개인의 작품을 사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무조건 미술은행을 도입하기보다는 지역에 맞는 미술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명재 창원 아츠풀 삼진미술관 큐레이터는 "지역 작가의 작품을 사주면 좋지만 작가들 간 '나눠먹기' 식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공공기관이나 문화시설 등에 대여하는 '인천미술활성화기획지원' 사업을 한다. 사진은 부평역사(중층대합실) 내 전시 공간이 마련되기 전과 후 모습. /인천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경우 작품 선정에 따른 논란이 시행 초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금도 예술성이냐 대중성이냐, 저가의 작품 대량 매입이냐 고가의 작품 편중 매입이냐 등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정종효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은 "미술은행이 갖는 한계성을 극복하려면 작가 지원과 미술 대중화 두 가지 중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한다"면서 "작가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면 작품 선정 방법, 구입 방법 등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공정하고도 공개적인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치거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경연 등을 펼쳐 최종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다.

정 팀장은 "경남만의 특색이 살아 있는 미술은행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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