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2) 전남 순천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이 지원하는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두 번째 나들이는 전남 순천으로 갔다. 멀리 또는 가까이에 있는 습지를 찾아 즐겁게 누리면서 그런 습지가 우리 인간의 역사·문화·일상과 얼마나 깊이 관련돼 있는지를 몸소 느끼는 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습지와 생태계가 아주 소중한 존재임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그것을 지키고 가꾸려는 마음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낙안읍성과 순천만은 이런 성격에 잘 들어맞는 탐방 대상이다. 낙안읍성에는 인공습지라 할 수 있는 연못이랑 샘이 여럿 있다. 조선 인조 때 낙안군수였던 임경업 장군이 1628년 성 쌓기를 마무리한 이 읍성에서 요즘 들어 그 자취를 발굴해 복원한 것이다. 여기 연못들은 옥사(감옥) 가까이 있다. 그래서 안내판에는 죄수들 탈옥을 막는 데 연못이 한몫했으리라 적혀 있다. 하지만 뿐이겠는가. 마실 물로도 쓰고 농사 짓는 물로도 쓰고 아이 어른 놀고 쉬는 데도 썼다. 때로는 여기 물고기를 잡아 나눠먹기도 했으리라.

4월 10일 오전 11시 즈음해 다다른 마흔여섯 일행은 동문 낙풍루(樂豊樓)를 거쳐 낙안읍성으로 곧장 들어갔다. 오른쪽 임경업장군선정비 투박한 거북 받침돌도 보고 담장 안팎도 기웃대다 객사에 들어선다. 현판에 낙안지관(樂安之館)이라 쓰였는데 여기서 가장 큰 건물이다. 여기 궐패를 모셨던 임금 권위를 위해서인지 전체 일곱 칸에서 가운데 세 칸은 지붕이 한 뼘 더 높다. 뒤뜰에 가면 담장 너머로 오래된 나무가 여러 그루 보인다. 둥치가 아주 굵은 하나는 말라죽은 채였다.

낙안읍성 상설체험장에 모인 일행.

옆 동헌 사무당(使無堂)에는 객사와 달리 아이들이 넘쳐 난다. 곤장 때리던 형틀에 먼저 누워보겠다고 서로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이었는데 원님 살림집이던 내아는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바로 앞 동헌 출입문 낙민루(樂民樓)는 높다랗고, 그 옆 둥치 굵은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하마 우북했다. 겨우내 말라 있던 가지들에서 피어난 여린 잎들이 그늘을 그윽하게 만들어낸 덕분이다. 나이 많고 둥치 굵은 나무들은 이 밖에도 많다. 은행나무·팽나무·푸조나무·느티나무·모과나무 따위들이 곳곳에 드높이 서 있다.

일행이 낙안읍성을 거닐고 있다.

상설체험장에서는 진도아리랑 가락이 드높게 울리고 어린아이들 노래하는 모양 구경하는 사람들은 즐겁게 손뼉을 쳐댄다. 옥사는 사람들 가두던 데라 그런지 그늘이 유독 서늘하지만, 마당에 장만돼 있는 곤장틀과 큰칼과 주리틀은 이미 장난감이 돼 있다.

하지만 낙안읍성 으뜸 미덕은 넉넉하게 들어선 초가집과, 거기 살면서 일상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 내뿜는 생기와 살가움이다. 서문에서 오른 성곽길이 남문을 향해 굽어지면서 내려가기 시작하는 자리에 서면 이런 초가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텃밭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로 누렇게 이엉을 올린 풍경이 푸근하다. 다가가서 돌담길을 거닐면 담벼락에 걸린 연장들도 눈에 들고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 놓인 돌절구나 디딜방아도 정겨운 모습이다. 문이 살짝 열린 부엌에서는 점심밥을 짓는지 설거지를 하는지 사람 그림자가 움직이고 안방에서는 바느질을 하는지 무엇을 다듬는지 고개를 숙인 사람의 정수리가 보인다. 담장 위로 솟아오른 살구·매실·앵두나무들은 아마도 초가집과 나이가 비슷하지 않을까 여겨지고….

읍성 성곽 위를 걸어가는 일행.

읍성 안에 있는 민속음식점에서 동동주까지 곁들이며 점심을 먹은 일행은 순천만을 향했다. 훌쩍 웃자란 갈대들이 드문드문하거나 성기지 않고 빼곡하게 빈틈없이 우거진 갈대밭이 거기 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데, 메마른 갈대 몸통은 햇살에 따라 흰빛 잿빛 금빛으로 시시각각 달라진다. 갈대숲은 때때로 햇살뿐 아니라 갯바람도 불러들이는데, 사람 옷깃을 붙잡고 놓지 않던 바람은 우거진 갈대밭을 통째 무너뜨리면서 흐느적거리듯 춤추도록 만든다.

순천만은 이렇듯 습지가 갖는 심미·치유 효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풍성함으로 사람을 사로잡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깨끗하게 씻어내도록까지 한다. 이렇다 보니 순천만은 습지의 경제 효능까지 보여주는 셈이다. 심미·치유 효과를 바라고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니까 지역 경제에도 단단히 보탬이 되겠지.

갈대를 베어내고 나니 색다른 느낌을 주는 순천만 갯벌.

이번 순천만은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옛날 중학생 모습을 하고 있었다. 봄철에 한 번 베어내면 다른 계절에 더욱 풍성한 갈대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베어진 자리 대궁이에서 솟아나는 여린 초록빛은 메마름 가운데 돋아난 싱그러움이었다. 갯벌도 덕분에 거뭇거뭇 드러나 있어 우거진 갈대밭일 때보다 갯내음이 한결 짙어져 있었다. 보송보송한 게구멍은 아이 여드름 같이도 보였다.

베어낸 갈대는 여러 모로 쓰인다. 갈대로는 억새·볏짚과 마찬가지로 지붕을 이을 수도 있다. 발이나 모자나 돗자리, 그리고 울타리나 빗자루 따위 재료도 된다. 또 옛날 소금을 얻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바닷물을 가두고 햇볕에 말리는 일본식이 들어오기 전에는 바닷물을 솥에 담고 끓여 소금을 얻었다(자염법 煮鹽法). 갈대는 이 때 땔감이었다. 어쨌거나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고 밑동에서 다시 자라는 갈대는 막 싹튼 보리 같았으며 순천만은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말미암은 폐쇄를 풀고 생태체험선도 띄우고 있었다.

순천만 일대를 오가는 생태체험선. 올해는 조류 인플루엔자(AI) 때문에 한때 중단됐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장날(5일·10일)을 맞은 순천 웃장(북부시장)에 들렀다. 일부는 순대집에 들러 돼지수육을 안주 삼아 순천 토종 막걸리를 마셨고 대부분은 장터를 돌며 물건을 샀다. 여수 갈치, 말린 칡뿌리, 커다란 오이, 그리고 산나물과 푸성귀까지. 저녁 6시 30분 즈음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내릴 때 보니 대부분 크고작은 비닐 봉지를 하나둘씩 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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