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산약초 수집상 이몽 씨

"모든 사람은 도인입니다."

도인 같아 보인다는 말에 이몽 씨가 꺼낸 말이다.

그는 '도인 같아 보인다'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외모를 가졌다. 어깨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과 멋드러지게 기른 수염을 보고 있노라면 하얀 두루마기와 나무 지팡이만 안 들었지 영락없는 도인의 모습이다.

"약초상을 한다고 머리카락, 수염을 기른 건 아닙니다.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기른 거죠. 풀이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듯이."

   

이몽 씨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롯데마트 뒷길 장터에 천막 한 동 쳐놓고 '산약초 수집'이라 적힌 펼침막 아래에서 산약초를 판매하고 있다.

이 씨는 이 일을 10여 년째 하고 있다. 현재 위치에 자리잡은 건 만 3년이 됐다. 이전에는 전통시장이나 아파트 단지 요일장터 등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팔았다.

이 씨가 하는 일은 약초꾼들이 캐온 약초를 감정하고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가끔씩 직접 약초를 캐러 가기도 한다.

약초상을 하기 전에 이 씨는 운동을 했다. 1986년, 1988년 두 차례 경남 대표로 '미스터 코리아' 선발 대회에도 참가한 경력을 가진 보디빌더였다.

중학교 때부터 유도, 복싱 등 다양한 운동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만 해도 운동을 하면 빌어먹는다, 깡패밖에 안 된다라는 인식이 부모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몰래 시작한 것이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하려는 것에 최선을 다해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남을 공격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니까 부모님도 엇나가지 않겠구나 하시며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웨이트 트레이닝은 32년간 이 씨의 직업이 되었다. 보디빌딩 선수 생활도 하고 체육관도 운영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계기가 되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했고 몸도 잃었다.

"운동을 해서, 하면 되겠지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몸을 되찾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지금의 약초상. 이 씨는 오전 11시쯤 좌판을 벌여 저녁 7∼8시에 물건을 거둬들인다. 이 씨의 말에 의하면 '돈벌이는 정말 안 된다'지만 좌판을 연 이 8∼9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약초를 수집·판매하는 이몽 씨. 수양하기 위해 틈틈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강해중 기자

"손님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땐 책을 읽는다든지 명상을 합니다.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나 스스로 고요를 지킵니다.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집으로 돌아갈 땐 머리가 맑아집니다. 물론 평소보다 조금 더 벌면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사람이니까."

이 씨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림, 글은 수양의 한 방법입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 스스로의 우울함, 고뇌를 지우는 일입니다. 연필을 들고 스케치를 하세요. 한 곳에 집중할 때 마음도 고요해집니다. 책은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땐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아요. 마음이 평온할 때에 책을 읽는 것입니다."

이 씨의 좌판 곳곳에는 명상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글귀와 그림. 그 중 눈에 띄는 글귀. 諸行無常(제행무상).

"부처님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덧없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덧없다라는 말을 할 때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또는 '포기'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나를 갈고닦고,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최선을 다해 나를 완성해나가는 과정.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래지향적인 말씀인 거죠. 내 좌우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2남1녀의 가장인 이 씨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저 사람은 뭘 먹고 살지 걱정하지만 나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다들 힘들게도 산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네들은 '돈'의 개념에서 나를 보지만 나는 '삶'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거죠. 돈을 좇으면 몸이 사라집니다. 몸이 튼튼하면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참다운 삶은 돈이 아닌 인생의 아름다움을 위해 사는 겁니다. 부자가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 가진 것이 부족하지만 가족 간에 서로 이해하니 갈등이 없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지난 삶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지금 하루하루가 가장 행복하다는 이 씨는 마지막으로 꽃보다 잎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꽃이 아름다운 건 순간일 뿐이지요. 반면에 잎은 새순이 돋을 때부터 단풍이 질 때까지 긴 시간 아름답죠. 저도 잎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취재라기보다 '인생의 처방전'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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